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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어우야담

입력
2006.12.29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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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몽인 지음ㆍ신익철 등 옮김 / 돌베개 발행ㆍ상권 859쪽 하권 450쪽ㆍ상권 40,000원 하권 20,000원

만력 18년(1590년) 양양부(襄陽府)에 살던 어떤 아낙이 산에 들어가 뽕을 따고 있는데, 호랑이에게 쫓겼다. 잠시 후 괴성과 함께 나타난 뱀이 호랑이를 삼키고 동해로 들어갔다.(<호랑이를 삼킨 뱀> ) 낚시꾼의 실수로 칼에 상처를 입은 뱀이 그 일을 잊지 않으려 칼날을 17년 동안 몸속에 지니고 지내며 복수의 기회를 엿보았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복수를 할 줄 아는 뱀> ) 풀려난 잉어가 자신을 살린 사람의 은공에 보답하려 사내 아이를 보게 했는데, 훗날 훌륭한 장수가 돼 북쪽 오랑캐들을 정벌하고 80살까지 살았다.( <잉어의 보은> )

한국의 전통 설화들은 정겹다. 동글동글 야트막한 초가집을 닮아, 인간들과 조화를 이룰 줄 안다. 너무나 기괴하여 사람의 목숨은 추풍낙엽이 돼도 좋은 일본이나 중국의 옛 이야기들과는 격을 달리 한다. 인간이 있다. 그 집대성이 17세기의 자유주의적 문인 유몽인이 쓴 한국 최초의 야담집 <어우야담(於于野談)> 이다. 이번에 발간된 책은 30여종에 달하는 이본들을 모두 대조한 뒤 완성된 원문을 바탕으로 한 한국적 야담의 정본집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어우야담> 에 기록된 일들은 당시 민간에서 상시로 유포되던 우수마발들이다. 그 상상력은 더러 조야할 지 몰라도, 활달하며 더없이 소박하다. 한국적 심성의 원형이다. 일부 눈밝은 사대부들은 그 민중적 소재에 착목해 기록하고 전승했다. 이 책이 사대부 생활을 중심으로 한 필기류, 민중에게 일어난 일을 중심으로 기록한 패설류 등을 모두 수용하면서 다채로운 양상으로 변화ㆍ발전해 온 것은 그들의 노력이 오랜 세월 동안 누적된 결과다. 그와 함께 사대부 중심의 세계관이 희석돼 민중적 세계관으로 바뀌고, 민중적 세계관의 문학적 관심사가 탈사대부적 영역으로 확대되는 직접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상하 두 권으로 출판된 이 책의 상권은 번역본, 하권은 원문 모음이다. 모두 27권을 헤아리는 이본의 첫 페이지를 각각 영인하고, 본면에 그 내용을 한문 그대로 전부 소개했다. 신익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등 4명의 공역자들은 이와 같은 야담 텍스트를 연구하는 데는 독특한 방법론이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이처럼 오랜 세월을 거쳐 널리 전승된 경우, 그것이 갖가지 경로로 향유되면서 야담 텍스트로서의 조건을 구비해 나갔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권 모두 합쳐 1,3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그 동안 학계에서 텍스트로 널리 통하던 <만종재본> 의 오탈자 등 오류를 바로 잡고자 하는 학자들의 노고가 빚어낸 결과다. 신 교수는 “현실 세태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절묘하게 배합하면서 흥미롭게 서술해 나가는 이야기 작가 유몽인의 탁월한 능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며 “시대와 사람살이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되돌아 보게 한다”고 평가했다. 곳곳에 산재한 이본을 모으는 작업부터가 만만치 않았다. <동아패설본> 과 <이수봉본> 등의 소재를 수소문해 복사본을 입수하기까지, 연구진들은 손품과 발품을 아끼지 않았다.

이 책은 한국적 상상력, 집단 무의식의 보고다. 곳곳에 보석 같은 이야기들이 박혀 있다. 발견의 즐거움은 우리 몫이다. 치열한 콘텐츠 싸움의 시대, 여기 수록된 이야기들은 한국적 판타지의 곳집으로 불릴만 하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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