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무 서울대 총장은 29일 그와의 만남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평생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내놓은 70대 할아버지는 ‘조건없는 선행’에 만족했을 뿐이다.
이날 오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총장실. 이 총장이 엄모씨 등 학부생 2명에게 ‘김영업 장학금’전달식을 가졌다. 4개월 전 서울대 발전과 어려운 학생을 돕는 데 써달라며 2억원을 쾌척한 김영업(75)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 서울대측이 만든 장학기금이다.
서울대측은 김 할아버지를 초청해 직접 장학금을 전달토록 할 예정이었지만 그는 정중히 사양했다. “액수가 적어 부끄럽다”는 게 이유였다. 일부에서 장학금 전달을 ‘과시’로 여기는 세태는 그에게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 서울대 관계자는 “몇 차례 참석 요청을 했지만 김 할아버지는 고사했다”고 전했다.
충남 천안이 고향인 김 할아버지는 서른 살에 무작정 상경했다. 운전 기사, 고철 모으기, 채소ㆍ꽃 가꾸기 등 온갖 궂은 일을 해가며 돈을 모았다.1998년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 첫 여행이었을 정도다. 김 할아버지는 “배우지 못한 게 늘 한으로 남아 있었다”며 “서울대가 인재를 많이 배출하는 것을 보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장학금을 내놓게 된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2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 슬하에 자식이 없는 그는 관악구 봉천동 오피스텔에 혼자 살고 있다. 조카 등 친인척들에게 부담이 되는 게 싫어서다.
김 할아버지는 “언젠가는 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뒤늦게 실천에 옮기게 돼 기쁘다”고 활짝 웃었다.
한편 신분을 밝히지 않은 70대 할머니 2명도 이날 불우이웃돕기에 써달라며 삼성서울병원에 각각 1억원을 기부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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