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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문화계] (8·끝) 출판·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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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문화계] (8·끝) 출판·학술

입력
2006.12.29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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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은 꾸밈없는 책의 한 해 되길…대필·대리번역 논란 속 유쾌한 리콜 선언인문학의 위기… 학술·출판계 계속 과제로

책의 표지는 정직한 아름다움의 공간이다. 정직ㆍ정확해야 하는 활자의 기록성과 치장해야 하는 디자인의 미학은 맞서면서 조화한다. 그럼으로써 책의 외형적ㆍ내재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게 표지의 기능이지만, 또 활자 역시 서체의 꾸밈으로 하여 넓은 의미의 디자인 기획에 포섭되지만, 정직함은 치장보다 우선돼야 하는 가치다. 그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올해 출판계는 이 당연한 상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보여준 해였다.

미술 교양부문의 인기 저자 한젬마 씨의 대필 시비, 초대형 베스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 의 대리번역 스캔들이 있었다. 책 표지의 저자 및 역자 정보는 정직하지도 충분하지도 않았고, 그럼으로써 독자의 신뢰를 훼손했다. 또 스캔들의 주모자들이 면죄부라도 되는 양 당당히 내민 “출판계 관행”이라는 말은, 모든 책의 표지를 정직함의 공간이 아닌 “관행적 기만의 공간”으로 싸잡아 타락시켰다.

대필ㆍ대역 시비가 ‘관행’의 씁쓸한 풍경이었다면, ‘관행 파괴’의 달콤한 풍경도 없지는 않았다. 인문서적 전문 출판사 <그린비> 의 오자(誤字) 책( <자본주의 역사 강의> ) 리콜 선언이다. 가뜩이나 안 팔리는 인문서적을 오ㆍ탈자가 내부 기준(10여 개)을 초과했다는 이유로 전량 회수ㆍ폐기하고, 새로 찍은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출판사와 저자 및 독자의 상호 신뢰, 그리고 세상의 책에 대한 신뢰가 초판 2,000부 제작비용보다 훨씬 가치 있다는 점을 일깨웠다.

올해는 책이 이데올로기 논쟁의 주요 무대로 새삼 주목 받은 한 해이기도 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취지로 기획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 <…재인식>의 이데올로기적 한계와 맹점을 반박하고 <…인식>의 이념적 맥을 잇는다는 의도로 출간된 <근대를 다시 읽는다> 등은 근ㆍ현대사를 넘어 한국 사회의 담론과 현실의 지평에서 첨예하게 대립해 온 이념 진영간 논쟁 열기를 데우는 계기가 됐다. 계간 <시대정신> 을 무대로 한 뉴라이트 진영의 진보 지식인에 대한 연쇄 파상 공세도 대선 정국의 연장선상에서 이목을 끌었다.

‘인문학의 위기’도 올해 학술ㆍ출판계의 화두였다. 대학과 출판계가 한 목소리로 외친 인문학의 위기는, 그 위기의 본질과 실체가 비록 선명하지는 않지만, 우리 인문학의 현실과 그 가치를 새삼 되돌아보고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신뢰, 상식, 위기… 등 올해 출판ㆍ학술계의 화두는 지식사회와 시민사회가 성숙해지기 위해 겪어야 할 시련이고 풀어야 할 숙제들이다. 그 자체로 성장을 보증하지는 않지만,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성장통이다. 이 고통은 해를 넘긴 뒤에도 질기게 이어질 것이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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