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찾아가도 여전한 맛이 있다. 식 재료는 물론이요, 양념 한 방울, 정성 한 손 변하지 않는 여전한 맛. 반면에 ‘변치 않을 맛’이라 굳게 믿었던 그 맛이 예고도 없이 사라질 때가 있다. 몇 년 만에 찾았더니 식당이 문을 닫았다거나 요리하시던 할머님이 편찮으시거나 할 수 있다. 그러면 살아있는 생물처럼, 헤어진 옛 애인처럼 불쑥 그립던 그 맛은 추억이 된다. 기억 속에서만 맴돌 뿐, 더 이상은 현실화하기 어려운 무엇이 된다. 아직은 내가 찾아갈 때마다 변함없이 있어주는 맛과 더 이상은 맛 볼 수 없이 추억만 헤집어야 하는 그리운 맛을 얘기해본다.
<벌교 꼬막, 광양 불고기>벌교>
올 한 해 동안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편히 앉지 못하고, 자명종 없이 잠들지 못하고 일을 했던 것 같다. 웬만한 일에는 끄떡도 않는 내 체력이 바닥을 치기 일보직전. 과감히 12월의 마지막 주를 뚝 떼어 남도로 내려왔다.
무등산 바람이 맑기만 한 광주에서 전라선을 타고 화순으로 벌교로 고흥으로, 순천과 여수로 내달린다. 못되게 춥던 서울의 날씨에 비해 남쪽 지방의 온화한 기운이 섞인 이곳의 날씨는 푸근하다. 기온이 낮아도 햇살이 좋다.
여기에 올 때마다 맛이 변치 않는 먹을거리들은 나를 흥분시킨다. 예를 들어 겨울이 시작 되면서부터 별러 온 벌교 꼬막. 단단하게 아물린 껍질을 까벌리느라 손톱 끝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먹게 되는 맛이다. 단순한 조개라고 하기에는 맛의 층이 두껍다.
어떤 것은 피를 물고 있던 듯이 살 냄새가 강하고, 어떤 것은 유난히 속살이 팽팽해서 오징어를 씹는 것 같기도 하다. 가장 자잘한 새 꼬막은 혼자 한 바구니를 다 까먹어도 물리지 않는 은은한 맛! 초무침한 매콤한 꼬막은 따끈한 밥이랑 ‘스댕’ 대접에 섞어 넣고, 김 가루랑 참기름 넣어 고소하게 비벼 먹는다. 아작 아작 씹히는 배, 오이, 양파 등의 야채와 따뜻하게 비벼진 밥, 쫄깃한 꼬막이 한 입에 씹혀 침이 많이 고이게 된다. 그래서 소화도 잘된다.
광양으로 넘어가면 그 이름도 유명한 ‘광양 불고기’가 나를 기다린다. 몇십 년 동안 굽는 방법 하나, 맛을 내는 비법 한 줄 달라지지 않는 맛이 나를 기다린다. 오래 쓴 화로에 여전히 백탄으로 불을 지펴 고기를 구워준다. 고기는 지방을 꼼꼼히 제거하고 서울보다 도톰하게 썬다.
된장 맛이 나는 듯도, 간장 맛이 나는 듯도 하는 알쏭달쏭한 고기 양념은 결코 들큰하지 않다. 감미료나 연육제를 함부로 쓰지 않아 맛이 깊다. 석쇠에 고기 몇 점과 버섯, 마늘을 올리면 벌건 숯불에 금방 자글거리며 익어간다. 내년에 와도, 내후년에 와도 이 맛이 늘 여기 있을 것이라 믿기에 내심 든든하다.
<로스트비프, 돼지 떡갈비>로스트비프,>
나의 엄마는 2남 4녀 중 넷 째 이고, 네 딸 가운데는 둘째 딸이다. 엄마를 비롯, 김씨 집 딸 들이 모두 한 인물하고, 한 솜씨 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 큰 이모는 정말 미인이셨다. 훤하게 이마를 드러내면 서글서글한 큰 눈과 잘생긴 콧날이 반짝거려서 육칠십 년대에 명동 바닥을 거닐면 행인들이 뒤돌아 쳐다보던 인물이었다. 당시 첼로를 전공했던 미모의 아가씨는 공부에 뜻을 둔 신랑감을 만나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내가 미국에 가서 이모를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20년 가까이가 흘러서다. 이모는 이쁜 아줌마가 되어있었는데, 서양식으로 오븐을 척척 써가며 요리를 하던 그녀의 모습은 멋졌다. 어려서도 밥보다 빵을 더 좋아했다는 이모의 양식 만드는 솜씨가 그야말로 물을 만난 듯 했다.
그 중에서도 소고기를 오븐에서 통으로 구워내 얇게 슬라이스 해서 먹는 ‘로스트비프(roast beef)'는 단연 압권. 널찍하고 야트막한 오븐용 냄비에 고기를 넣고 천천히, 천천히 구워내는 요리인데, 관건은 소금, 후추의 밑간과 마늘 가루 등의 부수적인 양념이다.
이모의 비결이 무언지 더 자세히 봐 둘 것을. 이모가 젊은 나이에 갑자기 돌아가시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그 아름답고 도도하던 인물이 남의 땅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거다. 그 촉촉하면서 감칠맛이 살아있던 로스트비프의 비결은 끝내 비밀로 남게 되었다. 어쩌다 들른 양식당의 메뉴에 ’로스트비프‘가 보이면 엄마와 나는 말없이 서로 쳐다 볼 뿐이다.
추억의 맛은 얼마든지 더 있다. 술이 꼭지까지 취한 날이면 일행에게 큰 소리 쳐가며 몰고 가던 낙원동의 포차. 낙원상가 초입의 그 집은 돼지고기로 만든 떡갈비가 일품이었다. 잘게 다진 돼지고기에 무얼 그리 조물거렸는지, 고기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고 적당히 달착짭짤한 것이 막걸리와 먹기에 그만이었다. 남편과 연애를 하던 시절부터 결혼 후에도 가끔 들르면, 예쁜 카디건을 걸치고 고기를 뒤집던 주인아주머니는 “왜 그렇게 안 왔더랬어?”묻곤 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가보니 그 집의 주인이 바뀌어 있었고, 돼지 떡갈비는 취급하지 않는다 했다. 망연자실해진 나는 떡갈비 아주머니의 연락처라도 아시는지 주위 분들에게 여쭈었지만 알 길이 없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음식이 다시는 맛 볼 수 없는 ’기억’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맛으로 기쁘고 맛으로 슬프고, 맛이라는 것이 비단 반 뼘짜리 입만 관장하는 것이 아닌가보다. 맛있는 것을 많이 먹을수록 훗날 그리워할 일들도 많아질 테지만, 맛으로 쌓인 추억들이 내 안에서 또 다른 맛으로 거듭 피어오르기를 바랄 뿐이다.
음식 칼럼집 <육감유혹> 저자 박재은 육감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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