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어느날, 서울에 함박눈이 내렸다. 11층 편집국에서 바라본 북악산과 인왕산, 그리고 두 산을 병풍 삼아 고즈넉이 자리한 경복궁의 설경은 그야말로 한폭의 산수화였다.
오전 편집회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도 잊고 설경에 취해 있을 때, 마침 곁을 지나가는 사진부장을 붙잡았다. "이거 찍읍시다. 또 언제 이런 풍경을 보겠어요?"피식 웃던 사진부장이 조금 뒤 직접 카메라를 매고 나타났다.
북악산과 인왕산과 경복궁이 어우러진 설경 사진을 모니터에 띄웠다. 문득 2년 전까지 사용하던 3층 편집국이 생각났다. '3층에서 11층으로 이사하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겠지. 이 절경을….'
드르륵. 미닫이문이다. 허리춤 윗부분은 유리창이고 그 아래는 나무로 된. 세상에, 서울 한복판 13층 높이 빌딩에 미닫이 출입문이라니. 철제 책상에는 서랍이 하나뿐이다. 길이는 1m를 약간 넘을까.
그나마 각종 서적과 자료, 신문 더미가 울타리를 이룬다. 책상에는 겨우 원고지를 놓고 쓸 수 있을 정도의 공간 밖에 없다. 앞자리에 누가 있나, 궁금해지면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 길게 목을 빼야 한다. 간혹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면 그것은 작업중인 누군가가 있다는 신호다.
1980년대 마지막 해의 서울 종로구 중학동 14번지 한국일보 3층 편집국의 모습은 그랬다. 담배 꽁초 가득한 재떨이, 빨간 사인펜 줄이 죽죽 그어진 원고지와 파지들, 마감 임박을 알리는 소리, 기사를 쓰느라 빠르게 움직이는 손 놀림, 손가락 끝에서 타들어가는 담배, 육두문자 섞인 고함 소리, 전화 수화기 던지는 소리, 편집국과 원통형 계단으로 연결된 2층 문선ㆍ조판부를 오가는 분주한 발걸음, 현상액 냄새 물씬 풍기는 사진들, 클라이막스 후에 일순간 찾아오는 잠시 동안의 고요,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분주함….
그때나 지금이나, 어렵고 힘든 여건에서도 중학동 14번지의 편집국을 뜨겁게 달구는 것은 신문에 대한 기대와 믿음과 애정,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한다는 사명감과 기자 정신이다. 그 중심에는 하나씩 모은 팩트(fact)를 확인하고 퍼즐 맞추듯 진실에 다가서는, 중학동 14번지만의 전통이 있다. 좌고우면한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기에 중학동 14번지는 권력의 압력과 유혹 앞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그것은 지금껏 그랬듯이 앞으로도 한국일보를 지탱해줄 힘이다.
새해가 되면 한국일보는 외환위기 이후 중학동 14번지를 무겁게 짓누르며 에워싸고 있던 두꺼운 껍질을 깨고 일어선다. 그리고 또 한번의 엄중한 시기에 중학동 14번지를 떠나 새로운 곳에 둥지를 튼다. 그곳에서는 북악산과 인왕산과 경복궁이 버무려내는 설경을 볼 수 없다.
하지만 언제나 중학동 14번지를 생각하며 지난 52년간의 시간을 성찰할 것이다. 선배들의 땀과 열정이 배어있던 3층을 떠나 11층에서 비경을 얻었듯, 그곳에서 새로운 도약의 에너지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3년 뒤 돌아올 것이다. 굳건한 걸음으로, 중학동 14번지로.
황상진 문화부장 직대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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