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표절
알림

[지평선] 표절

입력
2006.12.29 06:34
0 0

이필상 고려대 총장이 논문과 저서 표절 문제로 시달리고 있다. 본인은 관행이었다는 주장인 모양인데, 몇 년 전과 올해 교육부장관을 잠시 하다가 표절 문제로 낙마한 두 인사가 했던 얘기와 똑같다.

표절이란 훔칠 표(剽), 훔칠 절(竊)로 쉽게 말하면 '도둑질'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도둑질이 관행이었던 적은 없다. 표절을 영어로 plagiarism(플레이저리즘)이라고 하는데 라틴어 plagiarius(납치하는 자)와 plagiare(훔치다)에서 나온 말이다.

1세기 로마의 피덴티누스라는 사람이 촌철살인의 경구로 유명한 시인 마르티알리스가 발표한 시 몇 편이 자기가 쓴 것이라며 "내 자식을 납치한 것과 같다"고 비유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 표절은 논문이나 책뿐 아니라 신문기사, 컴퓨터 게임, 대중가요, 영화, 문학, 음악, 연설 등 지적 활동과 관련되는 모든 분야에 존재한다. 미국 상원의원 조지프 바이든은 1987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포기해야 했다. 65년 법학대학원 1학년 때 쓴 리포트가 표절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박사학위 논문에 20년 전 피츠버그 대학의 두 교수가 쓴 책을 거의 통째로 베껴 망신을 샀다. 알렉스 헤일리는 유명한 소설 <뿌리> 의 일부를 다른 사람의 소설에서 베껴 원작자에게 65만 달러를 배상했다.

■ 송나라 문장가 구양수는 남의 시가 좋으면 무릎을 치며"어디서 얻어왔는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무애 양주동은 도쿄 유학 시절 함께 하숙하던 노산 이은상의 시를 읽고 구양수를 흉내내 "어디서 얻어왔느뇨?"라고 물었던 일을 회고록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 에 쓰고 있다.

감탄을 하면서도 혹시 표절이 아니냐는 의심을 깔고 있는 질문이다. 도둑질을 하려고 하는 마음까지야 어떻게 막겠는가마는 제동장치를 둘 수는 있다.

■ 미국역사가협회가 올해 1월 개정한 <윤리 선언> 을 보면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이 누구한테 빚진 것인지를 분명하고 철저하게, 그리고 남김없이 밝혀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독일 빌레펠트 대학은 몇 년 전 캠퍼스 전산망에 표절 여부를 체크하는 프로그램을 깔았다.

아차, 이런 얘기들의 출처를 안 밝혔네! 하마터면 표절을 다룬 지평선마저 표절로 얼룩질 뻔했다. 표절의 어원은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독일어판에서, 사례는 위키 영어판에서, 양주동의 일화는 한국일보 임철순 주필이 2003년 5월 29일자 이 난에 쓴 '어디서 얻어왔는가'에서 얻어왔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