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의 젊은 시절을 이 곳에서 보냈다는 사실이/정말 사실일까/…/학림다방은 남았다/여러 차례 주인이 장르별로 바뀌었다가 (후략)’ 2007년 2월 새 시집에 실릴 김정환 시인의 헌시 <학림다방> 이 장내를 지그시 눌렀다. 26일 오후 8시 대학로 학림다방. 50명이면 1, 2층이 꽉 차는 실내는 말 그대로 만원이 됐다. 학림다방>
1956년 옛 서울대 캠퍼스 옆에 문을 연 이후 최루탄 연기에 쫓기던 학림(學林)다방은 여전히 건재하다. 문을 연 지 50년 되는 해의 세밑에 열린 이색 송년회. 첫 날은 연출가 강준혁, 작곡가 강준일 형제가 클라리넷과 피아노가 교직하는 모차르트의 실내악으로 청중과 교감했다. 27일부터는 언론인 홍세화-춤꾼 채희완, 연극인 김민기-가수 윤선애, 화가 김정헌-소리꾼 임진택, 시인 황지우-가수 전인권, 통일문제연구소장 백기완 씨 등의 입담과 재주가 31일까지 매일 이어진다.
삐걱대는 나무 계단, 손때 묻은 나무 탁자, 클래식 LP 음악 등 학림다방은 곧 대학의 역사였다. DJ 일을 보았던 66학번 미학과 강준혁씨는 “처음에는 소주 파티를 하며 열띤 토론을 하다 모두들 술에 곯아 떨어지기 일쑤였다”며 “돈이 없어 강냉이를 돌리기도 하던 때였다”고 돌이켰다. 두루마기 차림으로 첫날 행사에 참석한 백기완 씨는 “춥고 배고팠던 1950년대, 이 곳에 오면 법대ㆍ의대 학생들은 막걸리와 차를 샀고, 나는 그들에게 농민혁명에 대해 이야기했다”며 감회에 젖었다.
학림다방하면 떠올리게 되는 변함없는 커피맛도 화제다. 20년째 이 곳 사장인 이충렬씨는, 정찬의 소설 ‘베니스에서 죽다’ 에서 ‘케이(K) 사장’으로 등장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문화계 인사다. 그의 결정에 따라 송년회 기간 동안 다방은 일찍 문을 닫는다. 오후 8시부터 열리는 송년회 준비를 위해 손님들을 일단 내보내고 장내를 정리한다. 길 건너편에서 소극장 학전을 운영하며 거의 매일 들르다시피 하는 김민기 씨와 이 사장은 이웃사촌지간이다.
언론인 선재규 씨가 사회자이자 1일 사장으로 나선 첫날 이후는 토종연구가 홍석화, 변호사 서현, 시인 강형철, 전 매경바이어스 가이드 대표 유영표, 연극인 오종우 씨 등이 31일까지 1일 사장을 맡아 손님들을 맞는다. 이어 문을 닫는 자정까지 이야기와 공연은 계속된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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