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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오래된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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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오래된 정원

입력
2006.12.26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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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새천년 봄에 출간된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 은 1980년대를 '관념ㆍ시대ㆍ역사'의 기존 틀에서 벗어나 '현실ㆍ개인ㆍ일상'이라는 새로운 틀로 바라본 걸작이다.

황석영은 성찰을 시도하면서도 행간을 읽어줄 걸 요청하는 소극성을 보였지만, 이 작품을 토대로 한 임상수 감독의 영화 <오래된 정원> (1월 4일 개봉)은 지난 6년 세월의 무게를 더해 한 걸음 더 나아간 자세를 취하고 있다.

주인공 한윤희(염정아)는 운동권 조직과 조직목표를 위해 희생하려는 후배에게 "인생 길어, 역사는 더 길어. 우리 좀 겸손하자. 너 그거 하지마. 조직인지 지랄인지"라고 일갈한다. 이 말을 운동권과 80년대에 대한 냉소로 읽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자유겠지만, 바로 그런 도식주의를 탈피하자는 게 그 말의 뜻임을 어이하랴.

● 새로운 틀로 바라본 80년대

한국은 본말의 전도가 매우 왕성하게 일어나는 나라다. 인간답게 잘 살아보자는 게 모든 이들의 삶의 목표일텐데,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목적을 죽이는 수단을 쓰고, 얼마후엔 수단이 목적이 된다. 모든 삶의 양식과 행태가 전쟁에 근접한다. 모두 다 목적이 된 수단을 향해 질주하느라 "왜 사는 거지?"라는 의문을 가질 시간조차 없다.

한국사회의 시간 속도는 워낙 빠르기 때문에,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100년이 넘는다고 볼 수도 있다. 경제발전이건 민주주의건 다른 나라들이 몇백년 걸린 걸 몇십년 만에 해치워냈다. 뿐만 아니라 갈등과 분열도 초고속이다.

2004년 4월 15일 자정 무렵을 기억하는가? 당시 노무현 정권 사람들은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 들었다. 47석의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2석 넘은 152석을 먹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위대한 지도자'로 다시 태어났고, 노 정권 사람들은 피를 나눈 형제들처럼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노무현이 국민적 원성과 조롱의 대상으로 추락하고, 노 정권 사람들이 서로 원수처럼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놀라지 않는다. 노 정권 사람들이 공동의 적(敵)에 대한 적대감으로 다시 또 손을 잡고 서로 뜨겁게 껴안는 모습을 보인다 해도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은 놀라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들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고 말았다. 목적을 이룰 수만 있다면, 무엇이건 가능하다.

영화 <오래된 정원> 에서 운동보다는 동료들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 때문에 16년 8개월간 감옥생활을 한 '광주의 아들' 오현우(지진희), 미혼모로 그의 딸을 낳고 그를 기다리다 암에 걸려 죽은 한윤희. 이들은 우리 시대에 환영받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이들을 지루하다고 생각할 관객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둘 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투철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 노 정권 인사들, 이 영화 꼭 보길

분배의 정의는 운동권에도 없다. 운동권 출신으로 출세한 이들이 운동하느라 패가망신한 이름없는 운동가들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가? 법 만들어 보상해주는 일? 그건 분배가 아니다.

분배란 내 주머니에서 나가야 한다. 내 주머니는 움켜쥐고 불리면서, 이름없는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이런 게 있다면)을 자신들이 부풀려 만들어 놓은 '수구 꼴통'들에 대한 적대감 발휘로 해소하고자 하는가? 혹 계속 출세하기 위한 권력중독성 책략은 아닌가?

이름없는 동료들을 생각한다면, 운동권 경력을 앞세워 세상에 대해 도덕적 우월감을 갖고 훈계하는 건 해선 안될 일이다.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한다. '친노ㆍ비노ㆍ반노'를 불문하고 모든 노 정권 인사들에게 이 영화를 볼 걸 강력히 권한다.

80년대의 삶에서 살려야 할 건 죽이고 죽여야 할 건 살리는 일을 해온 건 아닌지, 부디 눈물을 흘리는 기회를 갖길 바란다. 감독은 관객의 눈물을 막으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지만, 그래도 눈물이 흐른다면 막을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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