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망년회의 화제는 단연 '부동산'과 '노무현'이다. 누가 먼저 랄 것도 없다. 자연스럽게 집값 얘기가 나오고 노무현 정권에 대한 욕이 튀어나온다. 좌중은 금세 달아오르고 이 때부터 분위기는 '짜증 지대~로다' 모드로 바뀐다.
아직도 부동산 광풍의 대열에 동참하지 못한 친구는 버블이 터질 거라 주장하며(사실은 버블이 터지기 만을 학수고대하며) 목청을 높이고, 은행에서 억대의 대출을 받아 무리하게 아파트를 산 친구는 금리 오르는 것이 장난이 아니라며 버블이 터질까 노심초사하는 눈치다.
일찌감치 버블세븐 지역에 자리잡아 부동산 광풍의 재미를 톡톡히 누리고 있을 법한 친구도 예외가 아니다. 집값이 올랐다고 당장 팔 것도 아닌데 세금폭탄만 맞고 있다며 엄살이 심하다. 부동산 광풍을 즐기는 사람은 '건설족' 말고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난상토론의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대한민국 국민의 삶은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것이다. 운 좋게 좋은 동네로 이사 가는 바람에 본인도 예상치 못한 '부동산 로또'에 당첨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삶의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技三'이란 것도 실은 '편법과 눈치'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니 좋든 싫든, 제 판단에 합리적이든 불합리하든, 눈치껏 대세에 편승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잘 사는 방법이다.
외환위기 이전 '대마불사(大馬不死)'란 말이 한국 경제를 규정하는 명제였다면, 외환위기 10년을 맞는 오늘 한국 경제를 규정하는 말은 아마도 '대세불패(大勢不敗)'가 아닐까 싶다. 대마불사의 주체가 차입경영에 의존한 대기업이었다면, 대세불패의 주역은 감당하기 버거운 은행 빚을 내 부동산을 산 개인들이다.
주인공만 바뀌었을 뿐 무대와 줄거리는 똑같다. 금융당국이 부동산 발 금융위기를 경고하고 있지만 대세에 편승한 국민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국민은 내년에도 아파트 값이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외환위기라는 특수 상황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기억에 남을 만큼 집 값이 폭락한 적이 없다. 주식시장만 해도 몇 차례 '블랙 먼데이'를 경험했고, 상투를 잡았다가 '깡통'을 찬 투자자들이 속출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부동산에 투자해서 쪽박 찼다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대마불사의 신화가 외환위기를 맞아 하루 아침에 박살이 났듯이, 대세불패의 신화도 언제 깨질지 모를 일이다. 지금 그걸 염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나 아직 '로또의 꿈'에서 깨어나기에는 이른지 모르겠다. 외환위기는 우리에게 공정하고 객관적인 룰을 세우고 지키도록 가르쳤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코드가 '운칠기삼'이고 '편법과 눈치'라는 현실에 많은 성실한 국민들이 절망하고 있다. 이 판에 사태의 본질은 외면한 채 허울 뿐인 '반값 아파트'구호로 영리한 유권자들을 유혹해보겠다는 정치권의 용기가 가상할 따름이다.
마침 노무현 대통령이 TV로 중계되는 공식행사의 연설에서 망년회 술자리에서나 나올 법한 거친 언사로 또 한번 '남의 탓'을 해댔다. 그의 답답한 심정이 일면 이해되기도 하지만, 일상에 지친 국민들은 가슴이 콱 막힌다. 이래저래 우울한 세밑이다. 남은 망년회에선 술집 매상이 더 오를 것 같다.
김상철 경제부 차장대우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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