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아 온 국민이 2007년 ‘황금 돼지띠’의 해를 고대하고 있지만, 내년에도 한국 경제가 무기력증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주역인 주요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내년에도 ‘확장’이나 ‘공격’ 보다는 ‘수성(守成)’과 ‘내실’이라는 단어를 경영전략의 화두(話頭)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26일 한국일보가 국내 대기업 39개사 CEO를 대상으로 ‘2007년 경영계획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국내외 경기침체와 환율하락ㆍ금리상승 영향으로 내년에 확장 전략을 펼치겠다고 응답한 기업인은 전체의 5%에 불과했다. 반면 매출액이 줄어 들더라도 수익 위주 경영으로 전환하겠다고 강조한 기업인은 43.5%에 달했다.
경제 전반의 활력을 가늠할 수 있는 고용창출, 설비투자 증가율, 임금상승률 지표도 2006년 수준을 밑돌 것으로 예상됐다.
39개사 CEO 가운데 ‘내년에 채용규모를 늘릴 것’이라고 응답한 곳은 금호아시아나 롯데쇼핑 에쓰오일 CJ홈쇼핑 4개사 CEO에 불과했다. 반면 나머지 7개사 CEO는 채용 규모를 “올해와 같거나 혹은 줄일 것”이라고 답변했다. 나머지 29개사 CEO는 채용계획을 확정하지 않았으나, 대부분 규모를 줄이거나 올해 수준의 인원을 뽑을 방침이라고 밝혀 취업난이 여전할 것으로 조사됐다.
설비투자의 내용과 규모도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기에는 미흡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설비투자 규모를 올해보다 높게 잡았다고 답변한 CEO는 14개명에 그쳤으며, 9개 CEO는 투자규모를 줄이거나 올해 수준에서 동결하겠다고 응답했다. 15개사 CEO는 경영여건이 불투명해 아직 투자계획을 확정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심각한 것은 투자 확대를 고려중인 14개 기업 중 현대ㆍ기아자동차와 금호건설 등 전체의 50%에 달하는 7개사 CEO가 해외 투자에 비중을 두고 있다고 답변한 점. 이들은 해외 투자 요인으로 ‘현지시장 개척’과 ‘불안한 노사관계’를 꼽았다. 반면 GM대우와 KT 등 6개 기업 CEO들은 국내 투자를 늘리겠다고 밝혔는데, 대부분 업종이나 기업 지배구조 특성상 내수 투자에 전념하는 CEO였다.
샐러리맨의 주머니 사정도 올해보다 호전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주요 기업 CEO들이 내년 임금상승률을 올해보다 낮게 잡고 있기 때문이다. 39개사 CEO 중 내년 임금 인상률을 올해보다 높게 적용하겠다고 밝힌 CEO는 금호건설 단 1개 회사에 불과했다. 반면 5개사 CEO들은 인상률이 올해보다 낮을 것이라고 밝혔다. 나머지 15개사 CEO들은 올해와 비슷한 수준의 인상률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환율ㆍ금리ㆍ유가 등 경제여건이 불리한 가운데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 등 정치 변수까지 도사리고 있어 대부분 CEO들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해 보수적 경영전략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도 “기업들의 투자회복을 위해선 규제를 혁파하는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라이벌 기업간 전망은 엇갈려
올 한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재계의 대표적인 라이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내년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라이벌 CEO들은 경제성장률에 대해 비슷한 전망을 했으나 내년의 전반적인 경영전망, 투자계획 등에서 다소 입장 차이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신세계 vs 롯데
유통 지존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는 신세계 구학서 부회장과 롯데쇼핑 이인원 사장은 거시경제지표 가운데 부동산, 금리는 모두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롯데 이 사장은 국제유가의 하락을 예견한 반면 신세계 구 부회장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봐 차이를 보였다. 올해 월마트 인수 등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는데 성공한 구 부회장의 경우 내년 경영이 ‘나빠질 것’이라고 전망한 반면 이 사장은 ‘올해와 비슷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해외와 국내 어느 곳에 우선순위를 둘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구 부회장은 중국에 상당수의 이마트를 출점한 점을 감안, 국내부문에 주력하겠다고 응답했다. 반면 롯데마트의 베트남 진출 등을 준비하고 있는 이 사장은 국내와 해외에 모두 힘을 기울이겠다고 밝혀 시각차를 드러냈다.
국민은행 vs 신한은행
은행부문 선두주자인 국민은행 강정원 행장과 조흥은행과의 통합을 계기로 선두자리를 추격중인 신한은행 신상훈 행장은 거시지표 전망에서 차이를 보였다. 신 행장은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으며 금리도 현재 수준으로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우려할 만한 외부 환경변수로 신 행장은 부동산 가격 급등을 꼽았지만, 강 행장은 국내외 경기침체의 장기화를 꼽았다.
SK텔레콤 vs KT
통신시장을 이끌고 있는 SK텔레콤 김신배 사장과 KT 남중수 사장은 내년 경제 전망과 관련, 남 사장이 김 사장에 비해 다소 비관적인 견해를 보였다. 내년 경영여건에 대해 남 사장은 올해보다 나빠질 것이라고 본 반면 김 사장은 올해와 비슷할 것으로 예측했다. 거시지표에서 남 사장이 환율 상승을 예견한 반면 김 사장은 환율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일류 기업과 비교했을 때 경쟁력 수준에 대해서 김 사장은 그 격차를 많이 좁혔다고 대답했지만 남 사장은 그 격차가 더 확대될 것이라고 대조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환율 추가 하락" 64%… 가장 큰 변수
2007년에도 한국의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보수ㆍ내실경영에 주력하려는 것은 국내외 여건이 올해보다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설문 조사에 응한 39개 주요 기업 CEO 대부분은 환율, 국제유가, 금리, 부동산 등 전반적인 경영여건이 내년에도 악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요컨대 불투명한 전망아래 우울한 경영전략이 만들어진 셈이다.
39개 대기업의 CEO들은 내년의 경영여건이 올해보다 좋아지기 보다는 나빠질 것으로 예상했다. 개선될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39명중 7명(17.9%)에 불과한 반면 악화할 것으로 응답한 사람은 16명(41.9%)에 달했다. 나머지 16명은 올해와 비슷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이에 따라 CEO 대부분은 내년 한국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올해(5%)보다 0.5% 포인트 이상 낮은 4.0~4.5% 수준으로 예상했다. 일부는 3%대의 낮은 성장률을 예상하기도 했다. 5%대 성장률 의견을 제시한 CEO는 아무도 없었다.
2007년 기업 경영의 가장 큰 변수로는 환율이 꼽혔다. 올해 우리나라 수출기업을 위기 상황에 몰아넣은 환율 하락세가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전체 39명의 CEO 가운데 64%가 넘는 25명이 환율이 추가로 하락할 것으로 응답한 반면, 다시 올라갈 것으로 보는 사람은 7명(17.9%)에 불과했다. 환율 하락 및 경기침체와 함께 대통령 선거 등 정치일정도 경영을 위협하는 주요 요소로 꼽혔다.
불안한 경영 여건 때문에 대기업의 내년 투자활동도 전반적으로 저조할 전망이다. 내년에 설비 투자를 늘리겠다고 응답한 CEO는 14명에 머문 반면, 투자 규모를 줄이거나 2006년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응답은 각각 5명과 4명에 달했다. 투자 계획을 확정하지 않았다는 응답도 16명에 달했다. 연말까지 투자계획을 확정하지 않을 경우 대부분 투자규모가 전년에 미치지 못하는 관행을 감안하면 2007년 대기업 투자도 대폭 늘어날 가능성은 희박한 셈이다.
국내 기업이 해외 투자에 주력, 일자리가 해외로 유출되는 ‘고용없는 성장’ 현상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39명의 CEO 가운데 해외 투자에 주력하겠다고 응답한 CEO가 13명에 달한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국내 투자를 꼽은 사람은 11명에 불과했는데, 대부분 내수관련 기업이었다.
남성과 신규 취업자 위주의 기존 고용관행이 내년에도 계속 유지될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CEO들이 올해와 마찬가지로 내년에도 채용 인원 중 남성 비율을 70% 이상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또 경력사원을 스카우트하는 것보다는 대졸자를 신규로 채용, 자기 회사 사람으로 키우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한편 대기업들은 올해 열악한 경영 환경 속에서도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 경쟁업체와 비교했을 때 경쟁력 격차를 좁혔다’고 응답한 CEO는 22명(56.4%)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은 반면, ‘격차가 확대됐다’고 대답한 사람은 1명에 불과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CEO들의 재테크 전망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일반인보다 거시경제 전반과 실물경제 흐름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정보가 돈’이라는 말이 있는 만큼 CEO들의 내년 경제 전망은 일반인에게는 귀중한 재테크 정보이다.
39명의 CEO 설문조사에 따르면 내년에는 부동산 보다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처럼 부동산 가격이 올라갈 것으로 응답한 비율보다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대답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CEO들은 부동산시장 전망을 묻는 질문에 상승, 하락, 현상 유지에 3분의 1씩 답변했다. 반면, 주가 전망에는 상승할 것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부동산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11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28.2%였고, ‘하락할 것’이라는 답변은 13명으로 상승 의견보다 조금 많았다. ‘주가지수가 계속 오를 것’이라는 의견은 25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64%를 넘었다. ‘하락’(2명) 의견은 극소수였고, 현상 유지는 11명이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설문 참여한 CEO명단
국민은행(강정원 행장) 금호아시아나그룹(박삼구 회장) 금호건설(이연구 사장) 현대차(박정인 부회장) 기아차(조남홍 사장) 대우조선해양(남상태 사장) 대한항공(원종승 구조조정본부장) 동부일렉트로닉스(오영환 사장) 두산중공업(이남두 사장) 롯데쇼핑(이인원 사장) 롯데제과(김상후 대표) 롯데칠성(이광훈 대표) 삼성생명(이수창 사장) 삼성전자(이기태 사장) 삼성SDI(김순택 사장) 신세계(구학서 부회장) 신한은행(신상훈 행장) 아모레-퍼시픽(서경대사장) 애경㈜(최창활 사장) 에쓰오일(사미르 A 투바이엡 대표) 우리은행(황영기 행장) 코오롱(배영호 사장) 하나은행(김종열 행장) 하이닉스반도체(우의제 사장) 한국야쿠르트(김순무 사장) ㈜한화(남영선 사장) 한화석유화학(허원준 사장) 현대상선(노정익 사장) 현대카드(정태영사장) ㈜CJ(김진수 사장) CJ홈쇼핑(임영학사장) GM대우(그리말디 사장) GS홀딩스(서경석 사장) KT(남중수 사장) LG전자(이영하 사장) LG필립스LCD(박기선 사장) SK㈜(신헌철 사장) SK텔레콤(신헌철사장) STX(강덕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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