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한국 첫 우주인 후보 2명이 탄생한 서울 강서구 등촌동 SBS공개홀은 우주를 향한 우리 민족의 염원만큼이나 뜨거웠다. 최종후보로 뽑힌 고산씨와 이소연씨는 물론 탈락한 후보 4명과 심사위원, 취재진, 후보들의 가족, 과학계 인사들이 모두 한마음이 돼 서로 격려하며 우리 우주개발사의 한 획을 그은 역사적 순간을 자축했다.
70여분 간의 ‘기대와 떨림의 시간’이 지난 뒤 먼저 호명된 고씨는 다른 후보들을 꼭 껴안으면서 “임무를 완수하고 귀환한 뒤 우주인 경험을 살려 조국의 우주개발사업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감격에 겨워 했다. 이어 다른 한 자리를 차지한 이씨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이공계 연구자들에게 희망을 주겠다”고 말했다.
이날 6명 후보들은 대중친화력평가를 위해 우주유영 과학실험 등 각자 주어진 주제로 1분간 뉴스 리포팅을 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의 방송이나 귀환 후 과학홍보대사 수행 등 역할을 고려한 최종 관문이었다. 후보들은 시종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우주인으로서 갖춰야 할 전문지식을 막힘 없이 전달, 감탄을 자아냈다.
7명의 심사위원들은 리포팅 점수를 4월 이후 9개월 간의 1~4차 평가와 합산하고, 지난 3주일 간 진행한 국민선호도 투표까지 따져 최종후보를 선정했다. 심사위원들은 “6명 후보 모두 체력이나 업무 적합성 등에서 우위를 가리기 어려울 만큼 실력이 출중했다”고 입을 모았다.
행사장 안팎의 시민들도 우주인 최종후보 탄생에 환호했다. 2차 선발에서 탈락했다는 공군 방공포병학교 이인섭(24) 중위는 “진정한 승자를 아낌없이 축하하고 격려하기 위해 왔다”며 “이들이 전국민의 염원을 이뤄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우주정보소년단 단원 권해린(11)양은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이 뽑힌 역사적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며 “우주를 향한 꿈이 더 커진 것 같다”고 밝게 웃었다. 대학생 강병현(25)씨는 “이제야 한국이 본격적인 우주개발시대에 진입하게 됐다는 게 실감난다”며 반겼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우주인 배출 의미
25일 한국 최초의 우주인 후보가 최종 결정됨으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35번째 우주인 배출국의 자리를 예약했다. 우주인 배출은 한국 항공우주기술이 일정한 수준에 올랐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국민적 자긍심 고취에도 큰 도움이 되는 쾌거다.
인류 최초의 우주인이었던 러시아 공군 중위 유리 가가린, 중국 선저우 5호를 타고 우주를 다녀 온 양 리웨이(楊利偉) 공군 중령, 브라질 마르코스 폰테스 육군 중령 등은 귀환 후 국가적 영웅이 됐다.
우리 우주인 후보가 훈련을 받을 가가린훈련센터로 이름이 기려지고 있는 가가린은 인류의 꿈이자 미국의 우주 경쟁심에 불을 붙인 주인공이었다. 중국은 양 리웨이 이후 추가로 2명이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올 때마다 국민들의 자존심이 하늘을 찔렀다.
물론 우리나라의 우주인은 우리 손으로 개발한 유인 우주선을 태우지 못했다. 260억원을 들여 러시아 우주선인 소유즈호를 빌려 타고 국제우주정거장에 다녀올 뿐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정된 자원을 가진 우리나라로서는 돈 낭비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 시야를 우주를 넓히는 것이 우주개발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실려있다. 우리나라는 1992년 소형 과학실험위성인 우리별 1호, 1999년 중형 실용위성인 아리랑 1호를 쏘아올리는 등 우주개발역사가 20년에 불과하다.
자력 발사는 2008년 이후에나 계획돼 있는 우주기술 후발국이다. 최근 정부는 우주항공분야에 대한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 바짝 고삐를 죄고 있다.
2015년 세계 10위권의 우주강국 진입을 우주개발중장기기본계획의 목표로 설정한 정부로서는 우주개발 투자에 국민적 지지가 절실한 시점이다. 때문에 우주인 귀환 후 대중활동은 우주로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임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프랑스 첫 우주인으로서 후에 과학기술부 장관이 돼 우주산업을 지원한 신경과학자인 클로디 에뉴레(1996년 미르 탑승)와 같은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최기혁 우주인사업단장은 "지금까지 우주개발은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기만 하는 분야로 여겨져 왔으나 요즘에는 우주여행상품, 발사체 개발 등 민간이 주도하는 산업으로 그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우주인의 탄생으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면 앞으로 유인 우주기술 개발에 뛰어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최종후보 2명 인터뷰
25일 한국 최초의 우주인 최종 후보로 뽑힌 이소연(28·여·한국과학기술원 박사과정)씨는 “우주에서는 근육이 줄어들고 키가 커져 나 자신의 과체중도 해결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고산(30·삼성종합기술원 연구원)씨도 “이름이 고산이라 고산병은 안 걸릴 줄 알았는데 걸리더라”며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모습도 지금 생각과는 다를 수 있다”고 말하는 여유를 보였다.
고씨는 또 내게 조금이라도 있는 장점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저와 동생을 훌륭하게 키워준 어머니(김미대자씨) 몫이며 모든 영광을 어머니께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고씨는 우주에 우리나라 사람이 가는 의미에 대해 “유인우주비행은 우주개발의 궁극적 목표”라며 “당장 우리 기술로 우주에 가지는 못하더라도 노하우를 쌓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어진 임무 외에 가장 하고 싶은 일로 ‘우주유영’을 꼽았다. “막막한 우주공간에 한 점 떠있는 느낌이 정말 궁금하다”고 그는 말했다.
이씨는 “어렸을 때는 마징가 제트와 스타워즈를 꿈꾸다 크면서 현실을 알아갔다. 이처럼 우주에 우리나라 사람을 직접 보내고 나면 강대국의 리포트만 보는 것과는 천지차로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우주인 선발에는 남녀 구분이 없다지만 그래도 여성 후보인 이씨는 관심을 끌었다. “최종 우주에 남자를 보내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당당했다. 이씨는 “우주에 가고 안 가는 걸 떠나 2명의 최종 후보가 돼 러시아에서 훈련을 받는 것만 해도 큰 기회다.
산이 오빠가 가건 내가 가건 대한민국 대표로 우주에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 적합한 사람이 우주에 가게 될 것이고 남는 사람은 서포트하면 된다. 우주에 못 가더라도 (내 꿈인) 섹시하고 멋진 박사가 될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오히려 옆에서 듣던 고씨가 화를 내듯 “소연이가 여자라서 뽑혔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소연이가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생각했다”고 거들었다.
두 후보는 우주에서 돌아온 후에도 연구를 계속 할 생각이다. 홍보대사 역할도 충실히 하고 싶다고 했다. 이씨는 “현재 박사과정인데 일단 내년 4월까지 최선을 다해 앞으로 1년을 비우더라도 따라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계획을 밝힌 뒤 “박사과정에 들어올 때부터 과학기술을 홍보하거나 교육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홍보대사 역할을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고씨도 “연구를 계속하되 1년간 습득할 우주관련 기술을 전파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 학생이 제안한 물 얼리는 실험에 대해 “대류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우주에서는 물이 어떻게 어는지 정말 기대된다”고 했다.
두 후보에게 과연 어떤 점 때문에 자신이 선발됐다고 여기는지를 물었다. 이씨는 “우주인이 될만한 딱 한가지 출중한 능력 덕분에 선발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우주인으로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고씨도 ”어떤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꿈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우주인 앞으로 뭐하나
우주인 선발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2명의 후보는 내년 1월 15일부터 2008년 4월 우주에 갈 때까지 숨가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 우주로 가기까지
우주인 후보는 러시아에서 2007년 1월 15~26일 의학검사를 받는다. 귀국 후 언어 러시아문화 우주기초 과학을 습득하고, 3월 다시 러시아에서 일종의 훈련 오리엔테이션을 받는다.
본격 훈련은 4월 8일부터다. 가가린훈련센터에서 1년간의 고된 훈련이 이어진다. 중력이 없고 고도가 높은 곳에서의 생활, 또 우주선 발사 시의 엄청난 중력 가속도에 미리 신체를 적응시키는 과정이다. 소유즈호에서 생명지원시스템과 통신을 사용하는 법을 익히고 국제우주정거장(ISS) 러시아 모듈의 설계도를 익히며 비행 시뮬레이션도 배운다. 오지 착륙에 대비한 생존훈련도 거친다. 중간중간 한국에 와서 18가지 임무 수행을 위해 실험을 제안한 과학자를 만나 교육을 받고 모의실험을 해야 한다.
● 우주에서의 10일
꿈 같은 우주생활은 단 열흘이다. 우주선 발사 5일 전부터 외부 접촉이 차단된 채 하루 4시간 이상 집중 체력훈련을 받는다.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소유즈에 탑승해 220㎞ 고도로 상승하기까지는 10분밖에 안 걸린다. 하지만 ISS에 진입하려면 이틀이 더 걸린다. 소유즈호가 서서히 고도를 올리며 ISS와 도킹 준비를 하는 동안 우주인은 비좁은 우주선에서 최소한의 생명유지만 한다. 도킹 후 우주인은 비로소 무중력을 만끽하며 과학실험과 방송 등 임무를 수행한다. 8일 뒤 우주인은 소유즈를 타고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인근 초원에 낙하한다.
● 지구로 귀환한 후
2주간의 회복 후 귀국하면서부터 그는 ‘과학 홍보대사’의 임무를 부여받는 등 영웅이 된다. 각종 과학홍보와 우주프로그램 운영이 주 임무다. 광고 모델로도 각광받을 전망이다. 컵라면 먹는 우주인(일본의 라면 업체), 피자 먹는 우주인(피자헛), 콜라 마시는 우주인(코카콜라) 등은 인기 TV광고였다. 하지만 ‘CF 부자’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소속 기관인 항공우주연구원이 동의해야만 출연할 수 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 고산(30)씨 : 삼성 연구원… 복싱·등산 만능 스포츠맨
△삼성종합기술원 인공지능 연구원 △부산 출생 △광일초등학교, 아주중, 한영외국어고(중국어 전공), 서울대 수학과(학부)ㆍ인지과학협동과정(석사) 졸업 △1남1녀 중 장남 △키 171㎝, 체중 68㎏, 혈액형 A형, 시력 1.5ㆍ1.5
평가 내내 별 어려움을 못 느꼈을 정도의 강철 체력을 자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 때 산악부 축구부 복싱부에서 활동한 만능 스포츠맨이고, 2004년 프로복싱 신인왕전에서 동메달을 탔다. 해발 7,500m의 파미르고원 무즈타크 아타봉에 오른 경험도 있다. 고씨는 고산 등반이 극한 상황에서 활동하는 우주인 임무와 유사하다고 믿고 있다.
카투사 출신으로 영어가 능통하고 외고에서 전공한 중국어 실력도 수준급.
고씨는 지원동기로 “우주인이 되는 것은 내 꿈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육체적ㆍ정신적 준비가 돼 있다”고 적었다. 좌우명도 ‘건강한 신체와 건전한 정신’이다.
● 이소연(28)씨 : KAIST 박사과정… 태권도 공인3단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바이오시스템 박사과정 재학 중 △광주 출생 △송원초등학교, 송원여중, 광주과학고, KAIST 기계공학과(학부 석사) 졸업 △1남2녀 중 장녀 △키 164㎝, 체중 58㎏, 혈액형 A형, 시력 1.0ㆍ0.6
초등학교 때 시작한 태권도는 공인 3단이며 조깅 수영 마라톤을 즐긴다. 음악에도 관심이 많아 밴드의 보컬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이씨는 스스로 “한번 시작한 일은 끝장을 보는 성미”라고 말하는 악바리다. 지원동기로 “어려서 SF영화를 볼 때 우주선에 꼭 1명씩 여자 과학자가 탑승하고, 이 사람이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보면서 우주인의 꿈을 키워 왔다”고 밝혔다. ‘섹시한 멋쟁이 박사님’이 되고 싶은 꿈도 있다.
이씨는 자부심 강한 공학도다. 자신이 한국 최초의 우주인 꿈을 이룸으로써 이공계에 진학하려는 많은 학생과 이 분야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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