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손호철의 정치논평] 안타까운 독재자의 죽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손호철의 정치논평] 안타까운 독재자의 죽음

입력
2006.12.24 23:47
0 0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면서 우리는 일제로부터 해방이 됐다. 모두 이 소식에 기뻐 날뛰었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장준하 선생은 일제의 항복 소식을 듣고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우리 자신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세에 의해 해방이 됨으로써 앞날이 걱정되어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걱정대로 해방 후 우리의 미소 양국의 대립 속에서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 했다.

● 사법심판 안 받은 피노체트

1979년 10월 26일. 유신의 철권통치를 통해 영구집권을 노리던 박정희가 측근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박정희 독재체제에 저항해온 민주 투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당시 동아일보 해직기자로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던 이부영 전 의원은 환호성 대신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박정희를 이승만처럼 민중의 힘으로 무너트리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서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우려대로 박정희 체제를 민중이 힘이 아니라 측근의 저격에 의해 무너트린 한계는 12ㆍ12쿠데타와 5ㆍ18 광주의 비극으로 발전하고 말았다.

2006년 12월 10일. 지구 반대편의 칠레에서 '인간백정' 피노체트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는 선거에 의해 집권한 민주정부를 쿠데타로 무너트리고 칠레 대통령에 올라 최소한 3만명을 죽여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학살자이다(그에 비하면 광주에서 200여명 '밖'에 죽이지 않은 전두환은 차라리 '휴머니스트'로 보일 지경이다).

그러나 피노체트의 인권탄압 희생자들, 그리고 칠레와 세계의 인권운동진영은 그의 죽음에 환호성을 지르기보다는 이구동성으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피노체트야말로 아마도 역대 독재자의 죽음 중 민주진영이 가장 애통해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 이유는 그가 인기가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어렵게 진행되어 온 사법적 심판을 받지 않고 죽은 것이 너무도 안타까워서이다.

그에 대한 심판은 그가 신병치료를 위해 유럽에 갔다가 인권침해에 대해 사법적 심판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유럽에서 일면서 시작됐다. 이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칠레에서도 2000년 그에 대한 심판이 시작됐다.

그러나 피노체트가 치매 등을 이유로 내세우고 기득권까지 가세하면서 그에 대한 사법처리는 6년이 넘도록 이루지 못한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얼마 전 고문과 납치, 재산 해외도피 혐의로 그를 기소했는데 갑자기 그가 숨을 거둔 것이다. 이는 박정희를 민중의 손에 의해 청와대부터 쫓아내지 못한 것만큼이나 정말로 안타깝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처럼 칠레를 비롯해 군사독재를 경험한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은 최근 과거청산에 들어갔지만 대부분 아직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와 비하면 군 출신의 전직 대통령을 두 명씩이나 감옥에 보낸 우리나라는 대단한 나라이다. 그리고 여러 실정에도 불구하고 그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중요한 업적이다.

● 노무현 정부의 과거청산 업적

현재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여러 과거청산작업도 마찬가지다. 물론 일부 언론과 야당들은 미래를 향해 나가도 시원치 않은 판에 허구한 날 과거에 매달려 있느냐는 비판을 하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도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무슨 과거청산이냐는 비판적 분위기가 강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역사적 과제이고 피노체트처럼 시간이 흘러 과거청산이 불가능해지기 전에 빨리 마무리를 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과거청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이를 강하게 밀어 부쳐온 노 대통령의 업적은 다른 실정들과는 별개로 높이 평가해 주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