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아파트가 화재에 무방비다. 방비가 제대로 안된 탓에 작은 화재라도 고층 아파트에서는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비상대피 시설이나 긴급 방화장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는 데다 소방당국의 고층화재 진압 장비마저 부족한 현실이 아파트 화재 사고를 키우고 있다.
1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S아파트 7층에서 불이 나 위층으로 불길이 번지는 바람에 8층에 사는 원모(57)씨는 아내(50)와 아들(25)을 잃었다. 이들은 비상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가다 화염을 견디지 못해 7층과 8층 사이 창문을 통해 뛰어 내려 숨졌다.
10월 28일에는 경기 양주시 백석읍 모 아파트 7층에서도 불이나 일가족 3명이 베란다에서 떨어져 숨졌다.
두 사건 모두 아파트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었거나 비상계단에 방호문만 있었어도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게 소방당국의 진단이다.
24일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2004년 34명, 지난해 38명, 올해는 11월 현재 50명을 넘어서는 등 최근 3년간 크게 증가했다. 특히 11층 이상 고층아파트의 경우 다른 장소에서 발생한 인명 피해 비율을 2배 정도 웃돌았다.
아파트 화재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는 데도 소방당국의 장비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전국 소방파출소 683개 중 고가사다리를 보유한 곳은 전체 23%가량인 152곳에 불과했다. 더욱이 상당수 고가사다리와 굴절차의 높이는 50m밖에 안돼 15층 이상 아파트 화재에는 속수무책이다.
초기 화재에 대응할 수 있는 스프링클러 설치 실태를 보면 더욱 한심하다. 전국의 10~16층 아파트의 경우 스프링클러를 갖춘 곳은 거의 없다. 스프링클러를 소방관계법상 16층 이상에만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소방 관계자는 “지난해 5월 개정된 소방법에 따라 내년 7월1일 이후 짓는 11층 이상 아파트는 전층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하지만 그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의무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소방 차량과 장비의 노후화도 심각하다. 서울시소방방재본부의 경우 보유 소방차량 927대 중 25%에 달하는 236대(소방차량, 화학차, 펌프차, 물탱크차)가 내구 연한 8~12년을 넘겼다. 아파트단지와 다중 건물에 설치된 스프링클러와 소화기 등 30% 이상은 작동이 불량하거나 고장난 것으로 드러났다.
턱없이 부족한 주차시설도 화재 진압을 어렵게 한다. 2000년 이전 지어진 아파트 단지들은 지상 주차장에 가구 당 한대도 주차하지 못할 정도로 주차난을 겪고 있다. 일가족 3명이 숨진 양주시 백석읍 아파트 화재도 불이 난 당일 수 십대의 차가 이중 삼중으로 일렬 주차해 있어 소방차 진입이 30분이나 늦어졌다.
베란다 대피통로나 비상 계단이 없는 점도 인명 피해 가능성을 높인다. 아파트 베란다에는 옆 세대와 경량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으나 대개 창고로 사용하고 있어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아파트 화재 시 대피요령
◆불길을 통과할 때는 물을 적힌 모포나 수건으로 몸과 얼굴을 감싸고 낮은 자세로
◆먼저 아래층으로 대피하고 불가능할 때는 옥상으로
◆방문을 열기 전에 손잡이를 만져보고 뜨거우면 다른 길로
◆엘리베이터는 정전으로 갇힐 위험이 있으므로 반드시 계단을 이용
◆상황판단 없이 높은 데서 뛰어내리지 말 것
◆화장실 등 막다른 곳으로 대피하는 것은 금물
◆고립되면 각종 수단을 동원해 자기가 있는 곳을 알려야
◆대피한 후에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서 구조를 기다린다
<자료: 소방방재청>자료:>
최수학 기자 s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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