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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 걸음 쉬기

입력
2006.12.22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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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다가 육지로 변하는 것 같이 달라지고 있다."

이 말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170년 전인 1837년, 예천의 시골선비였던 박득령이 한양 상경 후에 자신의 일기인 <저상일월(渚上日月)> 에 남겨놓은 깊은 탄식이다.

요즘처럼 바다를 갈아 육지로 만드는 일이 별 일도 아닌 세상에서야 그와 같은 탄식조차 진부하겠으나,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천지개벽'의 느낌이었을 것이다. 과거를 보기 위해 상경하였던 그가 서울에서 본 것은 하루가 다르게 인구가 늘어 걸어 다니기도 힘들 정도가 된 종로 거리와 상점들뿐만이 아니라, 말로만 듣던 천주교도들의 순교 장면도 있었다.

서울 한번 오자면 고개를 넘고 산을 넘어 몇날 며칠 밤을 걷고 또 걸어야 했을 이 선비는 과거도 과거지만, 그 길을 통해서야 얻게 되는 새로운 발견들이 또한 매우 소중했다.

"선비가 비록 낙방했다 하더라도 슬픈 마음이야 가질 수 없지 않은가"라고 점잖게 탄식한 후, 그는 그 이듬해에도 과거를 보러 서울로 올라왔고, 또 그 이듬해에도 그러했다. 젊었을 때는 매년, 다리 힘이 빠졌을 때는 몇 년에 한번씩, 그는 과거를 보러 와 서울을 구경했으나, 서울만 구경한 후 과거에는 끝내 급제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평생 낙방거사인 이 선비가 170년 전에 걸었던 길의 흔적이 이미 역사 속으로 묻혀들어간 한 개인의 삶과는 무관하게 내게 주는 느낌이 각별하다.

다섯 세대에 걸쳐 이어 쓴 어마어마한 일기로 역사 속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게 된 이 사람은, 그러나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일기에는 화려한 기록 대신 소소한 일상과,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으로서의 불안과 놀라움과 탄식이 곳곳에 들어있다. 170년 전에도 세상은 격변의 시대였고,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속도의 시대였을 것이다.

그 또한 아마 숨이 가빴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응하는 방법이라고는 걸어서 서울로 올라갔다가 다시 걸어서 내려오는 것, 그 먼 길을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 이외에 달리 무엇이 있었겠는가.

그 시절에 비한다면 엄청나게 빨라져, 그 속도를 비교하는 것조차 무의미해진 오늘날에도 실은 세상의 보통 사람들은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내딛으며 놀라거나 탄식하거나 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 보통 힘들지 않은 세상인 것은 분명하지만, 170년 전의 낙방거사처럼 짐짓 점잖은 척 "올해가 아니면 내년이 또 있지 않느냐"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보고 싶은 것은, 어느새 연말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박득령은 과거에 떨어지고 돌아와서는 밭에 씨를 뿌렸다. 천석꾼이었는데도 스스로 파종을 하고, 병든 소를 걱정했다. 벼슬에 목숨을 걸지 않을 수 있어서 여유가 있었을까. 아니면 제 손으로 뿌린 씨에 제 손으로 열매를 거두는 법을 알아서 그랬을까. 연말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지나간 한 해가 한심하게 여겨지고, 또 다가오는 한 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심히 초조하다.

그렇더라도 짐짓 한 걸음쯤 쉬는 척 해볼 수 있는 것도 연말의 미덕일지 모르겠다. 세상이 달라져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으니 세상의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어쨌든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다음 걸음이 있지 않겠는가.

김인숙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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