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 연구 동아시아 전체 조망 필요"
“주요 고전 하나가 번역되면 새로운 연구영역이 열립니다.”
조선통신사 사행기록 시리즈 <붓끝으로 부사산 바람을 가르다> <부사산 비파호를 날듯이 건너> <와신상담의 마음으로 일본을 기록하다> <조선후기 지식인, 일본과 만나다> 의 번역을 기획ㆍ감수한 이화여대 이혜순(국문) 교수는 18세기, 특히 12차례 조선통신사행 가운데 사실상 마지막 사행이었던 1763년 계미사행(癸未使行)의 사회사적ㆍ문학사적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후기> 와신상담의> 부사산> 붓끝으로>
“일본에 대해 낮춰보는 조선통신사들의 시각이 그 즈음 균형감각을 찾기 시작해요. 진정한 토론이 이뤄지고 일본 실용문화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죠. 정사 조엄이 고구마를 가져오고, 수차(水車) 그림을 그려오는 것도 그 때죠.”
조선 실학사상을 이해하는 맥락에서도 ‘연행록’으로 대표되는 중국 청류(淸流)에 국한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일본을 통해서도 실용적 지식 체험이 광범위하게 이뤄졌어요. 실학 연구의 시야를 넓혀 동아시아 전체를 조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계미사행의 세 사신(정사, 부사, 동사)을 수행했던 서기와 제술관(製述官)들의 기행기록- <일관기(日觀記)> <일본록(日本錄)> <화국지(和國志)> <승차록(乘槎錄)> 을 번역한 것이다. 저자였던 원중거, 남옥 등은 당대의 문장가들로 문학사적으로 주목할 만한 자료다. 승차록(乘槎錄)> 화국지(和國志)> 일본록(日本錄)> 일관기(日觀記)>
“1970년대 민족문화추진회(민추)가 번역한 <해행총재> 에 조엄의 <해사일기> 가 있지만, 실제 일본의 문화ㆍ지식인들과 교류했던 것은 이들 서기와 제술관이었어요. 책에는 그들이 일인들과 나눈 시와 산문 등이 적지 않아요.” 통신사 일행이 당도한다는 소식에 일본 전역의 학자 서민 등이 구름처럼 몰려와 토론하고 시를 나누는 장면 등도 책에 소개돼 있다. 해사일기> 해행총재>
“연구자들에게도 도움이 되겠지만 일반인들의 교양적 텍스트로도 좋을 겁니다. 번역자들이 제목을 정하면서 그런 희망을 담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연구자들의 외국 자료 독점은 극복해야 할 폐습 가운데 하나지만, 번역을 홀대하는 우리 학문 풍토에도 그 책임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제자 4명이 번역하는 데 꼬박 1년을 쏟았고, 수정하는 데도 그만큼 시간을 들였어요.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학문적 평가는 극히 미약한 실정이거든요.” 추가 번역 계획이 있냐고 묻자 그는 “번역돼야 할 자료들은 아직도 많지만…” 하더니, 말 꼬리를 흐렸다.
●심사평 - "사행록 되살린 기획·감수·번역 높이 평가"
임진왜란 직후인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총 12차에 걸쳐 이루어진 통신사행 중 11차에 해당하는 계미사행(1763~1764)은 에도(江戶ㆍ현재의 도쿄)에까지 갔다온 사행으로는 마지막 통신사행으로 가장 많은 사행록을 남겼다. 4권으로 번역된 이 사행록들은 거의 2,000쪽이 넘는 방대한 양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18세기 중기 조선 지식인들의 눈으로 기록한 당시 일본의 여러 모습들과 사실들을 살펴볼 수 있다.
편집부문 수상작으로 택하면서 심사위원들은 편집의 개념을 확대 해석하였다. 지금까지 기능적 수준에 머물렀던 편집의 개념이 근래에 들어 기획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출판 현장의 편집개념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무관심 속에 묻혀있던 사행록들을 되살려내기 위한 기획ㆍ감수자와 번역자들의 값진 안목과 노력도 높이 평가되었다. 적절하게 필요한 곳에 알맞게 삽입된 이미지들의 선택과 표현도 이 책을 수상작으로 결정하는데 보탬이 됐다.
그러나 한자로 된 일본의 인명, 지명, 용어 등을 우리의 발음대로만 표기한 점은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5년 여에 걸친 감수자, 번역자들의 고생과 이 책들을 우리 앞에 놓이게 해준 출판사의 용단에 격려와 축하를 드린다.
정병규 정디자인 대표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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