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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대리번역·대필 논란이 남긴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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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대리번역·대필 논란이 남긴 교훈

입력
2006.12.22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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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역서의 대리번역 논란에 이어 대필 논란이 또 불거졌다. 사실 출판업계에서 두 문제는 늘 뜨거운 감자였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인의 책은 대부분 대필이었고, 유명 문인들도 생계의 수단으로 대필을 '업'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공개되지 않은 진실처럼 여겨진 것이 사실이다.

이런 마당에 한 미술대중서의 저자의 책들이 대필에 의해 작성됐다는 의문 제기가 있자마자 거의 모든 매체가 이 건을 뒤늦게라도 추적보도한 것을 볼 때 지식사회에서는 이미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 글이 책으로 만들어지는 네 단계

한 사람의 글이 책으로 나오는 과정은 단순한 교정교열, 리라이팅(rewriting), 완전대필, 도용 등의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아무리 글을 잘 쓰는 이라 하더라도 비문과 오자는 있을 수 있기에 교정교열은 거쳐야 한다.

그러나 리라이팅 단계부터는 문제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다. 저자가 초고 상태로 써온 것을 스토리작가가 구성부터 다시 하고 완전히 새롭게 쓰다시피 하는 것은 도덕성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이런 경우 외국처럼 저자와 스토리작가가 처음부터 논의해 방향을 확실하게 정하는 것이 옳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전문가가 안목은 탁월하지만 글을 쓰는 능력은 떨어질 경우 스토리작가의 도움을 받아 공동저자로 책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책이 정보 중심에서 이야기 중심으로 바뀌면서 대중은 전문가의 식견과 감동을 동시에 추구하기에 상품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동원되는 방식이라 할 것이다.

완전대필부터는 문제가 심각하다. 저자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대필자가 완벽하게 혼자 쓰는 것인데 유명인들이 비싼 돈을 들여 자신의 홍보수단으로 책을 펴내는 것이기에 무조건 사라져야 할 폐습이라 할 것이다. 또 자기계발서처럼 전문가로서의 이미지가 중요한 경우 저자의 이름만 빌리고 출판사가 대가를 지불하는 경우도 매명으로 볼 수 있기에 마찬가지다.

마지막 단계인 도용은 그야말로 범죄의 수준이다. 대학교수들이 연구업적을 부풀리기 위해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려주는 것은 애교에 속한다.

영세한 대학교재 출판사들에게 남의 저서에다 서지사항의 일부만을 바꾸고 자신의 저서로 둔갑시켜 수십부만 제작해줄 것을 요구하는 사례마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제작기술의 발달로 소부수 제작이 가능해지고 대학이 승진시스템을 엄격하게 한 다음부터 그 빈도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이 경우에는 책이 시판되는 것은 아니기에 대부분 표면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범죄행위에 가담한다는 심리적 부담을 느낀 출판사가 이런 행위를 거부할 경우에는 대학의 실력자들까지 동원해 압력을 가하기까지 하는 것으로 미뤄 짐작해볼 때, 이런 사실은 학계의 공공연한 비밀에 속하지만 누구 하나 앞장서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

● 공공연한 비밀, 문제 제기 안해

올해 연말에 터진 두 번의 '대리' 소동을 접하면서 지식사회 종사자라면 누구나 심한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소동들을 우리 사회가 보다 성숙해지기 위한 성장통으로만 보기에는 어딘가 뒤가 구린 것은 사실이다.

지금 인터넷을 통한 '1인 미디어'는 갈수록 위력을 얻어가고 있다. 따라서 대중매체나 1인 미디어를 통해 '대리' 행위를 했다는 사실은 언제나 공개될 수 있다.

그렇게 되는 순간 당사자들은 도덕적 치명상을 입고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대리'로 만든 책은 차고 넘치기에 아마도 그런 일은 잦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당사자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두 차례의 대리 파동은 이 같은 명백한 교훈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준 것만으로도 그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한기호ㆍ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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