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 성장 비해 눈에 띄는 작품 줄어… 시대정신 담는 치열한 부족 아쉬워
불안하다. 양적으로는 분명히 늘었고 눈에 띄는 책들도 많건만, 그 불안감은 심사를 마치는 순간까지 사그라지지 않았다. 의외로 고만고만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으며 한 해를 대표할 만한 빼어난 책이 과연 무엇인지 고민했다. 시대정신을 담아내거나, 거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신을 찾고자 하는 치열함이 담긴 책을 만나기 어려웠다. 새롭고, 역동적이고, 저돌적이며, 문제제기적인 책이 몇 해 전보다 못하다는 느낌이었다.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단군 이래 최악의 불황 탓인지도 모른다. 지속되는 시장 불황은 의미 있는 책의 생산을 가로막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늘 그러는 가운데서도 살아 움직인 것이 출판이었다. 그것만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변화된 시장환경에 대한 적응의 문제인 듯싶다. 교양인들을 위한 의미 있는 기획보다 논술시장을 겨냥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고, 질을 보장하는 책보다는 매출 증대에 신경을 곤두세운 책들이 점두를 점령한 탓이라 여겨졌다. 불안감에 이유는 있었다.
그러나 희망을 버릴 수는 없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치 있는 책을 내고자 애쓴 저자들과 출판인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문제의식에 충만한 책들이 나왔고, 우리의 지식창고를 풍요롭게 할 고전적인 저서들이 번역되었다. 주목할만한 신인들의 책도 있었으며, 시쳇말로 ‘이름값’하는 중견 학자들의 저서도 있었다.
이만하면 되는 것 아닌가? 비록 눈에 번쩍 뜨일만한 대형 기획물이 없었고,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만한 문제작은 없었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이룬 지적 성취를 책이라는 그릇에 담아낸 것만으로도 만족의 근거는 된다. 그러니, 희망을 품을 수밖에.
그렇지만, 감히 주문하건대, 다시 우리 출판이 ‘야성’을 찾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비록 거칠더라도, 비록 시장에서 깨지더라도 ‘기득’에 만족하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충만하기를.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이 안주로 나타나지 않기를. 깨어 있고 부숴버리고 넘어서게 하는 책이야말로 독자들로 하여금 읽고 싶게 만드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바로 그런 책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뜻으로 ’상‘을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도서평론가 이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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