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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박원순과 랠프 네이더, 그리고 시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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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박원순과 랠프 네이더, 그리고 시민운동

입력
2006.12.21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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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꽉 막힐수록 반전에 기대는 게 정치의 속성이다. 펄펄 나는 야당 후보들에 비해 지지율 5%를 밑도는 후보들로 내년 대선전을 치러야 하는 여권이야말로 극적인 반전에 희망을 걸고 있다. 여당의 내홍이 깊어질수록 난국을 헤쳐 갈 '외부선장'의 영입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박원순 변호사.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함께 범여권 제3의 대선후보로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는 인물이다. 인권변호사로서, 시민운동가로서 그는 공익적인 삶의 궤적을 밟아 왔다. 그가 변호 활동으로 번 돈을 쏟아 일군 <참여연대> 는 시민권력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막강한 비정부기구(NGO)로 성장했다.

이제 아름다운재단과 희망제작소의 상임이사로, 국민에게 나눔과 희망을 주는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 그에겐 어느덧 '시민운동의 대부'라는 존칭어가 붙는다. 콘텐츠와 도덕성을 갖춘 그가 여권과 진보 진영의 대안으로 회자되는 것은 일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정치적 잠재력을 공론화한 쪽은 보수 진영이었다. 뉴라이트연합 공동대표인 제성호 중앙대 교수는 6월'변호사 박원순의 행보를 주목해야'라는 글을 통해 "내년 대선은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중 1명과 고건, 박원순의 3자 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고건 전 총리와 박 변호사의 대연합으로 한나라당 후보가 다시 역전패할 가능성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낸 것이지만 제 교수의 시나리오는 박 변호사가 갖는 정치적 파괴력의 일면을 그려 주고 있다.

박 변호사에 대한 정치권의 입질 소식이 들릴 때마다 미국 소비자운동의 대부 랠프 네이더(72)가 떠오르는 것은 그의 정치적 변신이 들려주는 경고음 때문이다.

프린스턴과 하버드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변호사가 된 네이더는 1965년 <어떤 속도에도 안전하지 않다> 는 저서로 미 자동차의 안전문제를 고발하면서 일약 시민운동의 기수가 됐다. 이후 아기음식 살충제 수은중독 연금개혁 은행경영 등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등 시민운동의 전설을 쌓았다.

그런 그도 아래로부터의 변혁에 의존하는 시민운동에 한계를 느꼈던가 보다. 네이더는 1992년을 시작으로 4차례나 대선에 출마, 정치를 통한 시민개혁의 완성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번번이 실패였다. 2000년 대선 때는 앨 고어 민주당 후보의 표를 잠식함으로써 진보 진영의 싸늘한 시선을 받아야 했고, 2004년엔 녹색당마저 그의 출마를 외면하는 수모를 겪었다.

박 변호사도 네이더의 추락을 새기고 있는 것일까. 그는 "나는 가만히 있는데"라는 말로 대선 출마 가능성을 차단해 왔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뉴라이트연합처럼 정치적 복선을 깔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의 가능성을 낮게 봐서도 아니다. 온전히 그의 정치권 진입이 우리 시민운동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소셜 디자이너'로서의 꿈은 대권에 도전함으로써 보다 원대해질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가 나설 때가 아니다. 그래야 불붙기 시작한 시민운동에 희망을 쌓을 수 있다.

네이더가 네 번째로 대선출마를 선언했을 때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대선에 끼칠 영향이 아니라 그의 위업에 끼칠 영향 때문에 가슴 아프다.

미국 개혁운동의 거인으로서 그의 이력에 쓰디쓴 마침표를 찍는다면 그건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아름다운가게'의 주인 박원순도 그의 위업에 비극의 방점을 찍게 할 수 있는 정치권의 손짓에서 멀어져야 한다. 아직 우리 사회는 우직하게 시민운동의 길을 좇는 아름다운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다.

김승일 사회부장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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