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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술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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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술 권하는 사회

입력
2006.12.21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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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펀한 송년회 술자리 다음날 아침, 술을 샀던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어제 많이 했다, 잘 들어갔지?" "너 신곡 많이 알더라." "어, 노래방 갔었어? 그랬구나…" 비슷한 경험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어제 과음했는데 차를 두고 오길 잘했다'며 아침에 집을 나섰다가 주차장에서 자신의 승용차를 발견했다. "어젯밤 많이 취하셨던데, 앞으론 운전하지 마세요." 아파트 경비원의 인사를 받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런 경우는 알코올성 치매(이하 '알치') 중증 환자로 의학적 치료를 요한다.

■ 필름이 끊겼다며 가벼이 여기는 알치는 의학용어로 정전(停電)을 뜻하는 'Blackout'이다. 과음 때문이지만 독주를 급히 마실수록 심해진다.

소주 2병을 2시간에 마시는 것보다 1병을 30분에 마시면 더 그렇다. 일반 치매의 경우 기억하고 있는 일들이 잘 생각나지 않는 데 반해 알치는 기억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다.

오던 집은 찾아오지만 당시의 상황은 아예 입력조차 안 돼 있다. 저장된 자료가 컴퓨터 화면에 안 뜨는 게 아니라 저장이 안 되는 것이다. 뇌(전두엽)세포가 파괴되어 '골이 비어가는' 병이며, 주변으로 전파되는 일종의 전염병이다.

■ 우리의 연간 알코올 소비량은 '두 당 9.3리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9위이지만 독주 소비량은 세계 4위다. 정부는 300만명 정도를 중증이든 경증이든 알치 감염자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 AP통신이 술깨나 마신다는 10개국 성인들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여부를 조사했더니 한국이 단연 1위로, 응답자의 81%가 일상적으로 느끼고 있다며 '한국의 독특한 전염병'이라 꼬집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짜증스런 사회를 올해의 4자성어는 밀운불우(密雲不雨)라고 함축했다. 영국의 한 단체는 한국의 행복지수를 세계 178개국 중 102위로 매겼다.

■ 왜 이렇게 마셔대나. "되지 못한 명예 싸움, 쓸데없는 지위 다툼질,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밤낮으로 서로 찢고 뜯고 하지. 그러니 무슨 일이 되겠소. …몸은 괴로워도 마음은 괴롭지 않았으니까. 그저 이 사회에서 할 것은 주정꾼 노릇밖에 없어…" 현진건의 단편 <술 권하는 사회(1921년)> 에 나오는 주인공의 독백이다.

아내는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하며 남편을 거든다. 그는 '사회'가 술집여인인 줄 아는 아내의 무지에 절망하며, 아내마저 술을 권하고 있다고 한탄한다. "85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째 이리 똑같은고"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병진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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