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관위가 대통령 입후보 예정자의 후원회 설립 허용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정치자금법 개정 의견을 내놓았다. 대통령 입후보 예정자들이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조성할 수 없는 현실을 생각할 때 환영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선관위 의견에는 국민의 선택권을 무시하고 거대정당의 정치자금 공급 확대에만 초점을 맞춘 독소조항들도 끼어있어 옥석의 구분 없이 동반 입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 선관위 개정 의견 문제 투성이
선관위의 의견은 크게 4가지다. 대통령 입후보 예정자가 선거 1년 전부터 후원회를 결성해 선거비용제한액의 100분의 5까지 모금할 수 있도록 제안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국고보조를 현재의 유권자 1인당 800원에서 1,000원으로 인상하고, 법인ㆍ단체의 선관위 기탁을 허용하며, 국세납세자가 자신의 납세액 중 1만원까지를 정치자금으로 지정해 납부하도록 하는 체크오프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모두 정치자금의 공급을 확대하고자 하는데 공통점이 있다. 비교적 깨끗한 선거였다고 평가받는 지난 대선조차 '차떼기'와 '10분의 1' 논쟁에 휩싸였던 것을 보면 정치자금의 현실화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백번을 양보해 정치권의 고비용구조 청산이 선결되었고 이제 양성자금의 공급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국민이 합의한다고 해도, 선관위의 의견은 공급확대 방식과 배분방식 모두에 있어 적절하지 않다.
먼저 국고보조 확대에 대해서는 정당은 제대로 일하지 않아도 항상 국민의 혈세를 지원해야 하는 조직인가라는 근원적인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각종 정책 실패는 논외로 하더라도 여당은 대통령 임기 첫 1년은 분당과 신당 창당 문제로, 그리고 임기 마지막 해는 열린우리당의 해체와 통합신당 논의로 지새우고 있다.
대통령 임기의 거의 절반을 정당놀음으로 허송세월한 것이다. 야당 역시 자신들의 마음에 맞지 않으면 국회를 점거하는 등 민주주의의 근본원칙을 스스럼없이 내팽개쳐왔다. 그래도 국민은 정당이 더 나쁜 짓을 할까봐 두려워 서 더 많은 돈을 내야 하는가.
이유는 또 있다. 지금도 주요정당의 재정에서 국고보조가 차지하는 비율은 이미 50%를 넘고 있다. 정당을 정당답지 못하게 할 정도로 국고보조의 비율이 과다한 것이다.
정당은 사회의 부분(part)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름도 파티(party)이다. 그런데 정당이 재정을 국고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한다면 정당은 사회를 대변하는 귀찮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구화해 사회와 유리된다. 이 때문에 민주국가치고 국고보조가 정당수입의 50%를 넘는 나라는 없다.
● 독소조항 바로잡고 보완해야
단체와 법인의 기탁금 기부 허용 역시 문제가 상당하다. 차떼기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를 바탕으로 우리 정치의 고질병인 정경유착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 단체ㆍ법인의 기부를 금지했었다.
그런데 선관위가 관리하는 기탁금이라는 명분으로 법 시행 3년도 채 안 돼 단체ㆍ법인 기부의 물꼬를 턴다면 결국은 기탁금이라는 칸막이를 무너뜨리고 한국정치를 다시 돈정치에 수장시킬 위험이 있다.
체크오프 시스템은 세금을 내든지 아니면 정치자금을 내든지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도록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의사를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문제가 없는 방식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정당에 기부할지를 국민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국고보조 배분방식에 따라 배분하겠다는 데 있다. 원내교섭단체에 국고보조가 집중되도록 해 놓은 불공정 자금배분방식을 바로잡지는 못할망정 확대적용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고액기부자의 신원공개제도 등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못한 현실에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것 역시 무엇을 위한 정치자금법 개정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김민전ㆍ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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