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표밭관리 차원의 부동산정책을 경쟁적으로 쏟아내 국민들의 과잉기대를 부추기고 시장을 어지럽히고 있다. 민생은 팽개친 채 정쟁놀음에 몰두하던 정치권이 돌연 산타클로스로 분장해 집값을 30~50%나 낮춰주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도 어처구니 없지만, 정책효과와 재정부담 등을 차분히 따져보지 않은 방안들이 횡행하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특히 야당의 '반값 아파트' 주장에 쫓긴 여당이 정부를 압박해 설익은 정책을 남발하는 것은 무책임한 정략적 접근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열린우리당이 민간아파트에도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키로 정부와 합의했다고 밝힌 것은 대표적 사례다. 이 사안은 정부ㆍ업계ㆍ시민단체ㆍ전문가 등이 수년동안 논란을 벌여왔 듯이, 순기능 만큼이나 부작용도 적지않아 정치적 결정으로 풀 일은 결코 아니다.
민간이 택지를 매입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재원도 천차만별이어서 택지원가 계산부터 쉽지 않은데다, 가격제한에 따른 공급 위축과 주택품질 저하 우려 등 선결해야 할 과제가 널려 있다. 그런데도 당정은 문제의 해법은 물론, 시행시기조차 확정하지 못한 방침을 공약처럼 던졌다.
열린당은 또 엊그제 세입자가 바뀌어도 전ㆍ월세를 5%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전ㆍ월세 등록제를 실시하고 집주인의 재계약거부 사유도 제한하는 내용으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ㆍ월세를 올리기 위해 세입자를 내보내는 집주인의 횡포를 막고, 거래 투명성으로 얻어지는 세수를 서민주거복지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은 제쳐두더라도, 2002년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때처럼 가격통제가 세입자를 오히려 내쫓게 하는 부작용 등은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취지와 명분이 뚜렷한 만큼 시장이 정책을 신뢰하고 순응하면 그것 만큼 좋은 일이 없다. 그러나 시장은 이기심과 인센티브에 의해 작동하는 곳이지, 천사들의 집합체가 아니다. 당정이 집값 및 전ㆍ월세 폭등을 자초한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덮은 채, '선한 목자(牧者)'처럼 행세하는 것은 또 다른 포퓰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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