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영화의 감독이 미셸 공드리라는 점을 분명히 해둬야겠다. 그는 지난해 <이터널 선샤인> 으로 사랑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줬다. 사랑으로 상처 받은 기억을 도려내려 할수록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켜켜이 쌓인 사랑의 흔적들을 발견하는 주인공의 번뇌가 사랑의 아련함을 곱씹게 해주었던 영화다. 자신의 머리 속으로 들어가 파편화한 기억들 틈에서 헤맨다는 기발한 설정을 선보였던 공드리 감독이 이번에는 ‘수면’을 기제로 삼아 꿈과 현실의 경계를 휘젓고 다니는 청년의 연애담을 들려준다. 이터널>
주인공 스테판(가엘 가르시엘 베르날)은 여섯 살 때부터 꿈과 현실을 혼동해 주변 사람들을 긴장시키곤 한다.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를 따라 멕시코에서 자란 그는 아버지를 여의자 어머니가 있는 파리로 거처를 옮긴다. 달력 회사에 취직한 스테판은 달력 디자인을 통해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려하지만 직장에서는 그의 엉뚱한 상상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직장에 지루함을 느낄 무렵 그는 옆집에 사는 스테파니(샬롯 갱스부르)를 알게 되고 그녀에게 연정을 품는다. 몽상에 사로잡힌 스테판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은 그들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며 연인으로의 관계 발전을 더디게 한다. 스테판이 일과 연애에서 겪는 좌절은 그를 꿈 속으로 내몰아 환상에 빠지게 한다.
영화의 눈요깃거리는 스테판의 꿈 속 세계다. 컴퓨터그래픽(CG)을 이용한 고도의 특수효과를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공드리 감독은 기술에 기대지 않고 소품만을 이용해 환상 속의 모습을 그려보인다. 사람을 거머쥘 만큼 커지는 스테판의 손, 당나귀 귀로 변한 스테판의 귀는 인형 소품으로 대신한다. 셀로판지로 만든 물에서 목욕을 하고 마분지로 만든 자동차를 운전하는 장면은 감독의 재기 넘치는 상상력에 감탄하게 만든다.
이처럼 조악한 소품으로 꿈 속 세계를 자유분방하게 그려낸 감독의 엉뚱함은 스테판의 천진난만함을 대변한다. 하지만 꿈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주인공처럼 두 세계를 넘나드는 영화의 내용 역시 점점 모호해진다. 감독은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청년이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귀엽게 그려냈지만 전작 <이터널 선샤인> 의 ‘기억은 지워도 그 안에 새겨진 사랑까지 지울 수 없다’는 식의 울림까지는 만들어 내지 못한다. 21일 개봉, 15세. 이터널>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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