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조건부 핵군축 회담 주장으로 6자회담 초반 베이징의 회담장에 드리웠던 먹구름은 걷힐 수 있을까. 북한은 본격협상이 시작된 19일 전날과는 달리 핵군축 회담 주장에서 한발 물러서는 신축적 행보를 보였다. 우리측 관계자는 “회담 첫날은 조건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회담을 하려면 핵군축 회담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을 뿐 현재 이슈는 아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북측이 완전히 핵군축회담 카드를 버렸다고 보기는 여전히 어렵다. 북한 당국의 입장을 대변해온 재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날 베이징발 기사로 “회담장에서 그들(북한 대표단)의 언동은 ‘위풍당당’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신보는 특히 “조미(북미) 두 나라가 핵보유국으로서 핵군축을 논의하게 된다면 논리적으로는 미국도 모든 핵무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도저히 수용하기 힘든 ‘상호 핵폐기’ 주장까지 내걸었다.
물론 미국은 이날 국무부 대변인 정례 브리핑을 통해 “북한의 협상 패턴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우리측에선 북한의 핵군축 주장은 다목적 포석의 노림수로 해석하고 있다. 우선 초반 기싸움에서 미국을 제압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미국의 일방적인 선(先)핵폐기 요구를 반대급부 없이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방코델타아시아(BDA) 실무협의에서 미국이 성의를 표시하지 않으면 6자 본회담 논의도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경고성 주장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1998년 핵실험을 실시한 뒤 제재를 받았던 인도와 핵기술 및 연료 제공에 관한 핵협력 협정을 체결했듯, “핵을 가진 나라는 결국 미국의 대접을 받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핵보유 카드를 끝까지 써먹으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핵군축카드를 많은 보상을 끌어내기 위한 ‘사석’(捨石)으로 활용하려 할 것으로 예상한다.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도 기조연설에서 “조건이 성숙되면 현존하는 핵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논의도 가능하다”고 언급했고, 조선신보가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종식과 신뢰 보장이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핵군축회담을 주장했다”고 밝힌 것도 주목된다. BDA 문제에서 어느 정도 접점을 찾고,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에 대한 보상이 충분해 ‘조건이 성숙한다면’ 핵군축회담 주장을 접겠다는 뜻도 가졌다는 분석이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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