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0일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발생한 은행 권총강도 사건은 허술한 총기관리와 금융기관의 안이한 보안의식을 그대로 보여줬다. 범인은 최고 부유층이 주 고객인 역삼동 국민은행 프라이빗뱅킹(PB) 센터에서 현금 1억원을 턴 뒤 유유히 사라졌다.
권총과 실탄을 갖고 있었지만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다. 도심에서 터진 전례 없는 대담한 범행에 시민과 경찰은 당황했다. ‘경찰의 날’에 발생해 경찰의 자존심은 더욱 상했다.
이틀 만에 붙잡힌 범인의 진술은 충격적이었다. 범인 정모(30)씨는 “범행에 사용할 총을 훔치고 은행에서 돈을 빼앗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우연히’ PB센터 간판을 보고 탐색차 들어갔는데 청원경찰도 없고 범행에 자신감이 생겨 지점장을 협박했더니 순순히 돈을 건넸다고 했다. 거금을 다루는 은행이 사실상 강도에 무방비 상태였던 셈이다.
권총과 실탄을 훔친 과정도 어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목동의 사설 사격장 주인은 “화보에 사격장 사진을 실어 주겠다”는 거짓말에 속아 권총과 실탄을 보여 주었다. 정씨는 주인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권총 등을 들고 사격장을 빠져 나왔다.
범인을 검거한 강남경찰서 김한곤 경감(41)은 “정씨는 침착하고 치밀한 성격이어서 초기에 잡지 못했으면 분명히 추가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며 “그 다음 상황은 상상하기도 싫다”고 말했다. 권총을 이용해 다른 범죄를 저지르다 여의치 않으면 유혈 사태를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는 뜻이다.
사건 이후 은행들은 저마다 고객의 출입 통제와 신고 체계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국민은행 PB의 경우 신규 고객은 미리 예약을 해야 방문할 수 있고 기존 고객은 멤버십 카드로만 출입이 가능토록 했다. PB센터 내 비상벨도 크게 늘렸고 직원마다 무선 리모콘을 지급해 버튼만 누르면 바로 경찰에 신고할 수 있도록 했다. 경찰도 월별, 분기별로 실시해온 총기ㆍ실탄 정기 점검 기간을 줄이는 등 실탄 사격장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경찰은 철저한 보안의식과 신속한 신고가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국민은행 PB 사건의 경우 자체 보고 등을 이유로 1시간이나 늑장 신고를 했다.
범인이 도주 차량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은행에서 제때 신고를 했다면 현장 검거도 가능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중요 시설인 은행에는 신고 접수 뒤 3분 내 도착이 가능하다”며 “현장 체포가 늘어나면 은행털이 시도 자체도 자연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