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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의 풍경-고종석의 한국어 산책] <42> 합치고 뭉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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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의 풍경-고종석의 한국어 산책] <42> 합치고 뭉개고

입력
2006.12.19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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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텔레비전의 오락 프로그램 '상상플러스'의 '세대 공감 OLD & NEW' 코너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도 세대에 따라 서로 다른 어휘목록을 지니고 있음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벌충하다’나 ‘넙데데하다’ 같은 말이 10대 청소년들의 귀에 선 것 이상으로 ‘지대’(멋지다, 엄청나다)나 ‘므흣하다’(흐뭇하다) 같은 유행어, 속어들은 기성세대의 귀에 설면하다. 새로운 세대가 쓰는 수많은 신어(新語)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것들이 난데없이 나타난 만큼이나 어느 순간 가뭇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것들은 그 본바탕이 ‘인스턴트 어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일부는 한국어 어휘장 속의 세력경쟁에서 살아남아 언젠가는 한국어 사전에 오를 것이다.

한 언어공동체 안에서 개인들에게 서로 다른 어휘 목록을 제공하는 것은 세대라는 테두리만이 아니다. 지역, 직업, 계급, 성 같은 소속 범주에 따라서도 개인들은 서로 조금씩 다른 어휘 목록을 지닌다. 이를테면 똑같은 한국어 화자일지라도 강원도 사람의 어휘목록과 전라도 사람의 어휘목록은 고스란히 포개지지 않는다.

서정시인의 어휘목록과 분자생물학자의 어휘목록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가로축 위의 차이들은 한 자연언어의 변화에 결정적 모멘텀을 주지 않는다. 반면에 세로축 위의 차이, 곧 세대에 따른 어휘목록 차이는 그 언어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를 가늠하게 한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듯, 새 세대의 언어는 앞 세대의 언어를 밀어내며 한 자연언어의 총체적 모습을 변화시킨다.

‘상상플러스’는 세대간 말 차이를 ‘어휘 수준에서’ 끄집어내 보여준다. 그것도 문법의 여러 층위와 단절된 형태로만 보여준다. 예컨대 동사 ‘웃기다’가 새 세대 한국어에선 형용사로 진화하고 있는 것(새 세대는 ‘웃기다’를 형용사로 보아 “정말 웃기다!”, “웃긴 대학” 같은 표현을 쓴다. ‘웃기다’를 동사로 여기는 규범한국어에서라면 “정말 웃긴다!” “웃기는 대학”이라고 말해야 할 테다)이나, ‘부엌’의 마지막 소리 /ㅋ/가 /ㄱ/로 바뀌고 있는 것(특히 서울방언 화자들은 ‘부엌에서’를 /부어케서/가 아니라 /부어게서/로 읽는 경향이 있다) 따위에 대한 관찰은 이 프로그램에서 이뤄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변화는, 비록 어휘 수준이기는 해도, 문법의 다른 층위가 개입한 탓에 일반 시청자들이 단박 납득하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그런데 언어 변화는 어휘 수준에서만, 더구나 문법의 다른 층위와 단절된 어휘 수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현대 한국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오히려 음운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다. 근년에 백낙청씨는 ‘흔들리는 분단체제’를 거듭 거론한 바 있지만, 목하 분단체제보다 훨씬 더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 한국어 모음 체계다. 구체적으로, 현실 한국어(또는 새 세대 한국어)는 규범한국어(또는 옛 세대 한국어)에 비해 모음이 한결 단출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오늘은 이 ‘흔들리는 모음체계’를 엿살피자.

우선, 서울말을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어 방언에서, 단모음 /ㅚ/(독일 작가 이름 Goethe의 첫 모음)는 거의 사라져버린 듯하다. 나이든 세대든 젊은 세대든 한국인들은 ‘외’를 복모음 /ㅞ/로 발음한다. 그래서 ‘괴멸’과 ‘궤멸’은 시각적으로만 구별될 뿐 청각적으로는 구별되지 않는다. 단모음 /ㅚ/를 아직 간직하고 있는 서남 방언에서도, 적잖은 새 세대 화자들이 이 소리를 /ㅞ/로 발음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단모음 /ㅚ/가 한국어에서 쫓겨날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또 환경에 따라 단모음(프랑스 작가 이름 Hugo의 첫 모음)으로 실현되기도 하던 /ㅟ/도 젊은 세대로 올수록 환경에 상관없이 복모음(‘마법사’를 뜻하는 영어 단어 wizard의 첫 두 음소)으로 발음되는 것 같다. 실은, 나이든 세대가 단모음이라 여기며 내는 /ㅟ/ 소리도 찬찬히 들어보면 또 다른 복모음(‘밤’을 뜻하는 프랑스어 단어 nuit의 모음)이기 일쑤다. 그러니, ‘표준어규정’의 ‘표준발음법’ 제4항에 명시된 “‘ㅚ, ㅟ’는 단모음으로 발음하되 이중 모음으로 발음할 수도 있다”는 지침은 “‘ㅚ, ㅟ’는 이중 모음으로 발음하되 단모음으로 발음할 수도 있다”고 고치는 것이 좋겠다.

다음, 대부분의 한국어 방언에서 /ㅔ/ 소리와 /ㅐ/ 소리는 합쳐지는 추세에 있다. 이젠 서울말을 쓰는 중년 이상 화자들만이 이 두 소리를 구별해서 내는 것 같다. 한국어 화자들 대부분이 ‘제재’의 첫 번째 모음과 두 번째 모음을 같은 소리로 내고, 그들의 귀에 ‘때’와 ‘떼’, ‘개’와 ‘게’, ‘배다’와 ‘베다’, ‘매다’와 ‘메다’는 구별되지 않는다. 나이든 세대의 규범한국어에서조차 /ㅐ/ 소리와 /ㅔ/ 소리의 거리가 아주 멀지는 않았다는 사정이, 이 두 소리의 중화를 부추긴 것 같기도 하다. 규범한국어 /ㅐ/와 /ㅔ/ 사이의 거리는 예컨대 영어단어 apple의 첫 모음과 any의 첫 모음 사이의 거리보다 가깝다.

단모음 /ㅚ/가 중모음 /ㅞ/에 합쳐지고 두 단모음 /ㅐ/와 /ㅔ/가 중화하고 있다는 것은 /ㅚ/와 /ㅙ/가 구별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 역사를 슬프게 만들었던 ‘왜적’과 ‘외적’도 소리로는 구분되지 않는다. 역사 시간에 교사나 학생이 “/웨적/의 침입”을 거론했을 때, 그 적이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것인지 아니면 막연히 나라 바깥에서 왔다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표준발음법’ 5항이 “이중모음으로 발음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ㅢ/도, ‘의존’에서처럼 단어의 첫 음소로 쓰인 경우말고는, 대체로 단모음 /ㅣ/로 발음된다. ‘표준발음법’도 이런 현실을 반영해 단서를 붙이고 있다. 그 단서조항의 예를 옮겨오자면, ‘띄어쓰기’는 ‘띠어쓰기’로, ‘희망’은 ‘히망’으로, ‘틔어’는 ‘티어’로, ‘무늬’는 ‘무니’로 발음된다.(‘무늬/무니’에 대해서는 상자기사 참조)

사라져 가는 모음은 이것들말고도 또 있다. 전통 서울말에서 모음 /ㅓ/는 짧게 발음될 때와 길게 발음될 때 그 소릿값이 달랐다. 짧게 발음될 때는 여느 /ㅓ/지만, 길게 발음될 때는 음성학자들이 ‘슈와’(schwa)라고 부르는, /ㅡ/와 /ㅓ/의 중간소리(영어단어 ago의 첫 소리를 길게 냈다고 상상하자)로 실현되는 것이 예사였다.

그래서 ‘거적때기’나 ‘건더기’의 첫 음절(짧은소리 /ㅓ/)과 ‘거지’나 ‘건강’의 첫 음절(긴소리 /ㅓ/)은 그 길이만이 아니라 조음점 자체가 달랐다. 그러나 이제 이 두 소리를 구별해서 내는 사람들은 서울내기 노인들말고는 없는 것 같다. 중년 이하 세대는, 서울내기들조차, ‘거지’의 ‘거’를 ‘거적때기’의 ‘거’로 발음한다.

어찌 보면 이 두 개의 /ㅓ/가 중화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랄 수 있다. 모음의 장단 자체가 한국어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으니 말이다. 젊은 세대는 마음의 창이라는 ‘눈’(짧은소리)과 하늘에서 내리는 ‘눈’(긴소리)을 구별하지 않는다. 먹는 ‘밤’(긴소리)과 어두운 ‘밤’(짧은소리)도 마찬가지다. 강조의 맥락에서가 아니라면, 대체로 짧은소리 쪽으로 합쳐지는 것 같다.

표준한국어에서 긴소리가 날 수 있는 환경은 매우 제한돼 있다. 긴소리는 복합어가 아닌 경우엔 첫 음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눈사람’의 ‘눈’은 긴소리지만 ‘첫눈’의 ‘눈’은 짧은소리이고, ‘말씨’의 ‘말’은 긴소리지만 ‘거짓말’의 ‘말’은 짧은소리다. 그러나 첫 음절의 경우에도 긴소리가 날 수 없는 제약조건이 여럿 있다. 어려서부터 입에 배어있다면 몰라도 ‘이론적으로’ 배워 실행하기엔 그 조건들이 너무 까다롭고 불규칙하다. 그래서, 모음들을 죄다 짧은소리로 내는 젊은 세대의 말버릇이 차라리 합리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젊은 세대가 주도하는 한국어 모음 체계의 변화 물결은 이제 언어 교육으로 되돌릴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듯하다. 말의 전문가라 할 방송 아나운서들조차 한국어사전이나 ‘표준발음법’에 명시된 규범적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21세기 한국어가 20세기 한국어와 사뭇 다른 모음체계를 지니게 되리라는 사실을 무심히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중세한국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성조가 사라진 것을 지금의 우리가 무심히 받아들이듯.

▲ 두 가지 /ㄴ/, 두 가지 /니/

‘무늬’를 /무니/로 발음할 때의 /니/는, 아주 풀어진 말투에서는 “아프니?”의 /니/로 실현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니가(네가) 그랬지?”의 /니/로 실현된다. 조금 전문적인 이야기이긴 하나 이 문제를 잠깐 살피자.

‘아프니?’의 ‘니’는 ‘니가’의 ‘니’와 소리가 다르다. 앞쪽 ‘니’의 /ㄴ/는 입천장소리(구개음)인 데 비해, 뒤쪽 ‘니’의 /ㄴ/는 혀끝소리(설단음 또는 치조음)다. 이 두 소리의 차이는 /ㅈ/와 /ㄷ/의 차이나 /ㅊ/와 /ㅌ/의 차이와 같다. 외국어 단어의 예를 끌어오자면, ‘아프니?’의 /니/는 ‘동행, 회사’ 따위를 뜻하는 프랑스어단어 compagnie(대략 /꽁빠니/)의 마지막 음절과 소리가 엇비슷하고, ‘니가’의 /니/는 같은 뜻의 영어단어 company(대략 /컴퍼니/)의 마지막 음절과 소리가 엇비슷하다.

/ㄴ/는 여느 환경에서 혀끝소리로 실현된다. 예컨대 /나, 너, 노, 누, 느/의 /ㄴ/는 죄다 혀끝소리다. 그런데 이 혀끝소리 /ㄴ/는, 한국어 음운규칙에 따르면, /ㅣ/ 모음이나 /ㅣ/ 선행모음(/ㅑ, ㅕ, ㅛ, ㅠ/) 앞에서 입천장소리로 변한다(구개음화). 예컨대 ‘아프니?’의 /니/만이 아니라 ‘냠냠’의 /냠/이나 ‘오뉴월’의 /뉴/에서 실현되는 /ㄴ/가 구개음화한 /ㄴ/다.

그러니까 이 규칙에 따르면 ‘니가’(‘네가’의 구어)의 첫 소리 /ㄴ/나 ‘무니’(‘무늬’의 현실 발음)의 둘째 음절 첫 소리 /ㄴ/도 입천장소리로 변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 소리들이 입천장恬??변하지 않고 혀끝소리로 고스란히 실현되는 것은 그 다음 소리 /ㅣ/가 온전한 /ㅣ/가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그 /ㅣ/는, ‘니가’에서는 /ㅔ/(‘네가’의 /ㅔ/)의 변형이고, ‘무니’에서는 /ㅢ/(‘무늬’의 /ㅢ/)의 변형이다. 본딧말의 모음이 변한 말에 잔상을 남겨 화자의 (무)의식 속에서 구개음화를 방해하는 것이다.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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