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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누가 희망을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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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누가 희망을 말하는가

입력
2006.12.18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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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하러 학교로 가는 날이면, 저는 성수대교를 지나 출렁이는 한강물을 건넙니다. 흘러오는 강물 저편을 올려다보면 멀리 올림픽대교의 타워와 워커힐이 바라보입니다.

고개를 서쪽으로 돌리면 한강물은 어느새 흘러가는 물이 됩니다. 흘러가는 물 저편에서 한남대교와 여의도가 아침을 맞고 있습니다. 바라보는 눈길에 따라 같은 강물이라도 때로는 흘러오는 것이 되고 때로는 흘러가는 것이 된다는 걸 그때마다 무슨 깨달음처럼 느낍니다.

● 집권층의 말 공허하기만 해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이름의 세 가지 시간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A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고백록> 에서 우리에게는 '과거의 것인 현재, 현재의 것인 현재, 미래의 것인 현재라는 세 가지 시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과거의 현재는 기억이며, 현재의 현재는 직관이며, 미래의 현재는 예기(豫期)라는 말입니다.

한해가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눈길을 돌리면 한해가 오고 있습니다. 그 비어 있는 시간 위에 약속과 기다림을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예기되어 있는 어떤 약속이 있는지를 저는 알지 못합니다.

5ㆍ31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집권당의 신임 당의장은 '이 정도면 정권을 내놔야 한다'고 했었습니다. 질곡의 나날을 그렇게 표로 말했건만 그러나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김모씨를 교육부총리로 내정해 놓고 있을 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여론에 역행하는 잘못된 인사'라는 평가가 54%였고 이때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서 응답자의 7.2%가 겨우 '잘하고 있다'고 응답했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지방선거에 나왔다가 떨어진 사람을 불러다 하나씩 둘씩 장관 자리에 앉힙니다. 국민의 뜻과는 아랑곳없이 엇나가는 정부, 그러다 보니, '뭐 이따위 나라가 다 있어'하는 막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황폐해지는 것은 우리들의 삶이었습니다.

'새로운 KBS, 희망의 KBS를 만들어 이를 통해 한국의 희망이 될 자신이 있습니다.' 이게 정문으로는 출근조차 못하면서 역주행으로 들어가는 KBS 사장이라는 사람이 말하는 희망입니다.

이건 희망이 아니라 절망입니다. 그가 만들어낼 희망이라는 이름의 그 무엇이 벌써부터 두렵습니다. 얼마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직원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의 마지막을 '새해의 희망이 보입니다. 새로운 희망이 있습니다'라고 끝내고 있었습니다. 이 말을 우리 모두가 가슴을 열고 껴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것이 그들만의 희망, 그들끼리의 희망이 아니라고 믿으면서 묻고 싶어집니다. 2006년을 보내면서 무슨 희망이 보이고, 어디에 희망이 있다는 것인가. 어떤 희망이 예기된다는 것인가.

● 내년에는 물처럼 살 수 있기를

우리는 하루하루 참 많은 것을 잊으면서 삽니다. 어쩌면 그런 망각의 그늘이 있기에 쉴 수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난 이맘 때에 품었던 저 큰 기대와 꿈의 몸통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그 빈 껍질만이 잘려나간 도마뱀의 꼬리처럼 우리 손에 초라하게 매달려 있다 해도 우리 모두는 미래의 약속을 가지고 한 해를 맞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내일을 기다리겠습니까.

같은 강물도 바라보는 자리에 따라 흘러가기도 하고 흘러오기도 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 다가오는 한해에는 물이 되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높은 곳은 돌아서 가는 물처럼 그렇게 가고, 슬프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라도 분노를 참고 기다리며 물처럼 고였다가 가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물은 흐르는 것을 멈추지 않듯이 그리하여 마침내는 바다에 가 닿도록, 그렇게 갔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해가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눈길을 돌리면 한해가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비어 있는 시간 위에 작더라도 하나씩 약속과 기다림을 마련해야 할 시간입니다.

한수산 세종대 국문과 교수ㆍ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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