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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진보의 역주행, 보수의 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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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진보의 역주행, 보수의 폭주

입력
2006.12.18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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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는 역사를 말하지 않는 게 좋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이런 말을 했다는 기사를 아침 신문에서 읽었다. '자기들이 잘 모르는 역사…'라는 전제가 붙었지만, 역사와의 대화를 훌륭한 정치가의 요건으로 여기는 상식에는 언뜻 의아한 데가 있다.

한국 독자를 위한 인터뷰였으니 정권의 편협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들으면 수긍이 간다. 신문들도 그런 뉘앙스를 애써 전하고 싶은 눈치다.

● 로마의 성공 토대는 '공생과 관용'

그러나 로마제국 역사를 깊이 탐구한 안목을 고작 이웃나라 대통령을 꼬집는데 쓸리 없다. 무릇 역사의 굴곡진 흐름을 시비하기보다 당면한 현실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전념해야 할 정치의 책임을 강조했을 것이다. "정치가는 정치를 하면 된다"는 막연한 충고도 그렇게 들으면 적실하다.

로마인들이 다양한 인종과 종교와 문화를 아우르는 제국을 이룬 바탕인 '공생과 관용'에 매료됐다는 작가의 말을 더하면, 곧 그 것이 정치와 정치가에게 긴요한 덕목이자 성공 비결임을 일깨웠다고 본다.

시오노 나나미 얘기와 함께 한국일보가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두고 국민의식을 조사한 결과를 2002년 대선 전과 비교한 기사를 관심 깊게 읽었다. 자신을 진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4년 전보다 6% 가량 줄고, 중도라고 답한 이가 그만큼 늘었다고 한다. 이에 비해 보수는 1.6% 증가에 그쳤다.

이런 조사가 국민의 이념성향을 정확히 반영하는지는 의문이지만, 참여정부가 표방한 이념과 정책에 대한 환멸감이 북한 핵 실험 등 외부 변화와 겹친 결과라는 풀이는 그르지 않을 것이다.

이 조사는 분배와 성장, 한미관계와 대북인식 등 여러 분야에 걸친 국민의식 변화를 보여준다. 특히 우리 국민이 흔히 짐작하듯 진보와 보수, 반미와 친미 등의 이분법적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이상과 현실의 조화 또는 타협을 스스로 모색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은 뜻 깊다.

정치와 언론 등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 그룹이 극단적으로 이념과 주장이 갈린 채 그야말로 나라가 두쪽 난 것처럼 다투는 것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우리 사회 진보와 보수 얘기에 시오노 나나미를 앞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정상사회라면 불과 4년 사이 쉽게 바뀌지 않을 이념적 지향을 변화시킬 정도로 이 정권이 실패한 근본은 무모한 역사 바로 세우기와 천박한 국가 정체성 논란이다.

한말까지 거슬러 올라가 기득권 계층의 죄상을 자의적 잣대로 고발하고, 편협한 사회 정치 경제 이념을 좇아 새로이 국가 정체성을 규정하려던 시도가 역사에 무지하고 오만한 과오임은 숱하게 지적했다.

그 과오에서 두드러진 것은 그토록 열망한다고 외친 '공생과 관용'을 스스로 저버린 채 독단과 아집과 이기적 탐욕에 겨운 모습이었다. 여기에 지독한 위선과 무능이 가세한 탓에 진정성을 지닌 정책마저 지지를 얻지 못했다. 현실의 엄중한 과제를 외면한 채 낡은 역사 속으로 역 주행한 나머지 마주친 참담한 결과인 셈이다.

그러나 정권의 신뢰가 와해된 지금,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 이야기에 누구보다 귀 기울여야 할 쪽은 우리 사회 보수세력이다. 여러 여론조사에 비춰 4년 전 완고한 고정관념을 깨고 이 정권을 택한 사회의 이념적 지평, 진보와 보수의 균형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본다.

굳이 이념을 경계로 논하지 않더라도 4년 전 국민 다수가 절실히 바란 것이 '공생과 관용'이었고, 이런 바람은 바뀌지 않았거나 한층 커졌을 것을 생각해야 한다.

● 정권 실패 틈탄 보수 회귀는 잘못

이를 간과하거나 외면한 채 공생이나 관용과 거리 먼 보수 이념과 정책으로 온통 회귀하는 것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 길이라고 외치는 것은 잘못이다.

또 다분히 기회주의적이고 어리석다. 정치와 언론은 스스로 세상을 바꾼다고 여기지만 국민을 바꾸지 못한다고 했다. 대선 향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사회의 균형과 안전을 위해 보수의 폭주 성향은 자제해야 마땅하다.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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