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장의 변명이 궁색하기 이를 데 없다.
도하 아시안게임 3ㆍ4위 결정전에서 이란에게 0-1로 패배, 노메달이라는 실망스러운 결과에 그친 핌 베어벡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패전의 책임을 엉뚱한 곳에 전가하는 발언으로 일관했다.
베어벡 감독은 이란전 패인으로 체력적인 부담으로 선수들의 전술 이해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공격수들이 소속팀 경기에 제대로 출전하지 않아 골 결정력이 떨어진 것을 메달 획득 실패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선수들의 전술 이해도를 높이지 못한 것은 과연 누구의 책임이란 말인가.
특히 ‘소속팀에서 많이 뛰지 못해 골 결정력이 부족했다’는 발언은 납득하기 어려운 핑계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11월 15일 이란과의 아시안컵 조별 예선 최종전을 시작으로 이란과의 3ㆍ4위 결정전까지 총 8경기를 치렀다. 게다가 공격수 6명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의 평가전부터 번갈아 경기에 나서며 실전 감각을 쌓았다. 마지막 2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쳤다고 해서 느닷없이 소속팀에서의 활약 문제를 운운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는 “23세 이하 공격수들 중에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뛰는 선수가 하나도 없다”며 “공격수는 한 시즌에 30경기 이상 뛰어야 감각이 유지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시안게임 대표팀의 공격수 대부분은 소속팀에서 30경기 이상 출전한 주전 선수들이다.
염기훈(전북)은 K리그에서만 31경기를 뛰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하면 40경기에 달한다. 원톱으로 번갈아 나선 박주영(서울)은 K리그에서 30경기, 정조국(서울)은 27경기에 나섰다. FA컵을 포함한다면 정조국의 출전 경기수도 30경기를 넘어선다. 최성국(울산)은 A3와 AFC 챔피언스리그를 제외하고 K리그에만 35경기에 나섰다.
K리그와 선수 차출 문제로 갈등을 겪었음에도 ‘일방 통행’식의 발언도 여전하다. 베어벡 감독은 내년 1월 카타르 8개국 친선축구대회에 올림픽대표팀을 이끌고 출전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구단에 양해가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FC 서울의 구단 관계자는 “차출과 관련해 어떤 협조 요청도 듣지 못했다”고 이를 부인했다. 베어벡 감독은 “카타르 대회는 선수들이 국제경험을 쌓을 좋은 기회”라고 말했는데, 동계 훈련을 통해 2007년 시즌을 준비해야 하는 K리그 구단들의 사정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한 자세다.
K리그 구단을 자극하는 위험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베어벡 감독은 특정 선수를 거론하며 “주전으로 뛸 수 있도록 다른 구단에 임대하는 문제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훈수를 뒀다.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본분에 맞는 발언이 아니다.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뛰지 못해 문제가 된다면 대표팀의 책임자로서 뽑지 않으면 그만이고, 그럼에도 충분히 대표팀에서 뛸 역량이 된다면 선발해서 그 재능을 발휘하게 하면 그 뿐이다.
김정민 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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