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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추적소크라테스가 에미넴에게 말을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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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추적소크라테스가 에미넴에게 말을 걸다

입력
2006.12.18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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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밀러 지음ㆍ진성록 옮김/부글 발행ㆍ413쪽ㆍ1만8,000원

‘대화’의 미래가 어둡다고 한다. 인류의 기원, 줄여 잡아도 언어의 역사만큼 오래된 ‘대화’의 역사가 쇠잔해지고 있다고 한다. 대화의 부재로 가정이 위기라고도 하고, 사회가 대립과 혼란 속에 빠져든다고도 한다. 한편에서는 <솔개> 처럼, “우리는 말 안하고 살수가 없나”하며 대화의 불모성을 탄식하고, “대화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착각일 뿐, 엇갈리는 독백만 있을 뿐”(레베카 웨스트)이라며 원인무효를 선언하는 소리도 들린다.

미국의 저명 에세이스트 스티븐 밀러가 쓴 <소크라테스가 에미넴에게 말을 걸다> (원제-)는 현대사회(엄밀히 말하면 미국사회)의 대화의 위기를 전하는 책이다. 책은 18세기 유럽 커피하우스와 살롱에서 꽃피웠던 격조 있는 대화문화, 더 멀리 중세와 고대 그리스 등 서양사 전반에 걸쳐진 대화의 문명사적 의미를 살피고, 그 퇴조의 원인을 살핀다.

저자는 대화가 언제나 누구에게나 대접 받은 것은 아니라며 서두를 연다. “지나치게 말이 많은 남자는 군인정신을 갖춘 사람이 되기 어렵다”(74쪽)고 생각했다는 스파르타의 정신도 있었거니와, 가까이에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정도로 침묵하는 무언의 남자를 찬미”한 소로, “예의 바른 대화보다는 야만적인 울부짖음이 더 좋”(325쪽)다고 한 휘트먼도 있다. 루소는 위선의 냄새를 풍긴다는 이유로 대화를 혐오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혐오한 것은 품위 없고 무의미한 대화였지, 대화 자체는 아니었다. 중년 이후의 삶을 내면의 독백으로 채운 16세기의 몽테뉴는 마음의 훈련법으로 대화만한 것이 없다고 했고, 끊임없이 자신의 개념들을 무찔러줄 지적 모험의 동반자를 갈구했다.

그는 “책으로 하는 공부에는 나른하고 연약한 몸짓만이 따르는데, 대화는 가르침과 연습을 한꺼번에 제공한다”고 썼다. 흄은 어떤가. 그는 “우리가 훌륭한 대화꾼을 즐기는 것은 그들이 안겨주는 즐거움 때문이지 그들이 제공하는 정보 때문은 아니다”고 썼다.

저자는 성서 <욥기> 와 플라톤의 <대화> 에서부터 계몽시대 문필가들의 책, 현대 하드보일드 문학의 대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문장까지 인용해가며 대화에 대한 다양한 입장, 바람직한 대화의 기술, 거시적 관점에서 대화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종교, 교역, 이성 등), 대화를 망치는 미시적 요소들(공손의 결핍과 과도한 공손 등)을 추적한다.

그런데 이 찬연한 대화의 역사가 왜 20세기 후반 들어 위기에 처한 것일까. 저자는 이성적 담론을 혐오하고 내면의 탐색으로 새 세상을 찾으려는 반체제문화에 혐의를 둔다.

대화보다는 개인의 해방에 사로잡힌 이들, 마약의 신봉자들, ‘허위의식’의 마르쿠제, 부르주아 사회를 헤게모니 노예(혹은 ‘진리체계의 죄수’)들의 세상이라고 비판한 미셸 푸코, 종교ㆍ이념의 광신자들, 체제에 대한 분노와 경멸의 언어로 ‘fuck!’을 연발해대는 ‘분노의 나르시스트’ 래퍼 에미넴까지.

또 기호(嗜好)에 따라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는 TV토크쇼 같은 ‘대화의 대용품’들, 아이팟 휴대폰 메신저 이메일 블로그 등 각종 ‘대화 회피 장비’들…. 세상은 지금 그 ‘전자 고치’속에 쌓여 있다는 게 저자의 서글픈 결론이다.

저자가 대화의 적으로 규정한 그런 모두의 혐의에 동의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또 ‘전자 고치’를 찢고 나와 알몸으로 서라는 말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에게 그렇게 시비를 거는 것은 어쩌면 부당하다. 그는 다만 에미넴 앞에 소크라테스를 모셔온 것뿐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그는 안절부절 못하며 입시(立侍)해 있다. 에미넴의 반응이 ‘퍼큐!’라면 이만저만한 실례가 아니겠기에.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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