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평택미군기지 이전 연기가 발표된 이후 평택시 상인과 건축업자들은 노골적으로 불만과 불신을 표시했다. 이들은 “일관성 없는 정부정책으로 줄도산하게 생겼다”며 아우성이다. 그러나 대추리 주민들은 “무리한 정책추진으로 인한 이전 연기를 반대주민 탓으로 돌리고 있다”며 정부로 화살을 돌리고 있다.
14일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진입도로. 길가에 원색으로 단장한 빌라들이 늘어서 있다. 한 눈에도 질 좋은 자재로 상당히 정성 들여 지은 집임을 알 수 있다. 모두 한글과 영어로 ‘임대 rent’라는 현수막을 달아 놓았지만 찾아오는 미군은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는 건축 중인 빌라도 상당수 눈에 띄는데 상당수 공사장에는 기지이전 방침이 알려진 후 인부들이 보이지 않는다.
대추리와 가까운 근내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길가 야트막한 곳이면 어김없이 빌라가 자리하고 있지만 주차 된 차량도, 다니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공사 중인 건물은 모두 ‘올 스톱’ 상태다. 파이프 벽돌 대리석 등 자재들만 여기저기 쌓여 있다.
미군상대 부동산업자 김수(45)씨는 “이 일대 최근 400여채의 빌라가 건축됐는데 이번 기지이전 연기 발표로 모두 망하게 생겼다”면서 “건축 중인 빌라들은 13일 발표 이후 일제히 공사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빌라건축업자 박명규(40)씨는 “올 하반기 건물을 완공했는데 기지이전 연기 소문이 떠돌면서 아직도 임대가 완료되지 않았다”면서 “업자들은 대응책을 마련할 생각도 못하고 그냥 일손을 놓고 있는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안정리에서 임대사업 중인 한 업자는 “미군들이 역내에 주택을 건설해 1차 타격을 받았는데 이번 이전 연기로 결정타를 맞게 됐다”면서 “정부정책을 믿고 먼저 투자한 사람들만 바보로 만든 이 정권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판매점이나 클럽하우스를 운영하는 상인들도 타격을 입기는 마찬가지. 캠프 험프리스 정문 일대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화려하게 돼 있었지만 연말의 들뜬 분위기는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미군은 거의 없고 반대로 가게를 내놓는다는 안내문만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안정리에서 클럽 엔터프라이즈를 운영하고 있는 이운희(48)씨는 “미군기지 이전 발표 후 반미시위가 격화하면서 미군들이 외출외박을 기피한 데다 이라크로 파병된 숫자도 상당수여서 2년여동안 불황에 시달렸다”면서 “요즘 만원짜리 한 장 구경하기 힘들어도 미군기지 이전만 믿고 버텨왔는데 이제 뭘 믿고 불황을 이겨나갈지 암담하다”고 말했다.
팽성상인회 김기호(61)씨는 “이 일대 상인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있으나 뾰족한 방법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면서 “이대로 가면 굴뚝 없는 공장 역할을 하던 이곳 경제는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하고 있는 대추리 주민들은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불만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평택범대위 측은 “이전 연기는 정부의 일방적이고도 무리한 정책추진으로 인한 것임에도 국방부는 반대 주민들 때문에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이번 일을 기회로 정부는 미군기지 이전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범대위의 한 관계자는 “연기를 발표하는 와중에서도 기지 4만평 확장과 빈집 추가철거를 운운하고 있다”면서 “기지이전 연기가 이전 무효화로 이어지도록 힘을 결집해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평택= 글ㆍ사진 이범구기자 gogu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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