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셋을 통해 신체를 조형하고자 했던 18세기 유럽인들이라도 2006년 한국인들의 치열함에 비할 수 있을까. 몸이 곧 권력이자 스타일이 된 시대, ‘S라인’을 살리려는 노력은 남녀불문 히프워머와 다이어트패치, 키높이깔창을 히트상품에 올려놓을 정도로 눈물겨웠다. ★표 참고. 꿈의 사이즈 44에 울고, 가짜 명품시계와 중금속 화장품 파동에 놀라고, ‘쌩얼’ 만들기에 목매고 블랙 미니멀리즘의 부활에 환호했던 한 해. 2006년 스타일산업의 풍경을 회고한다.
▲ 하반신, 유행의 중심에 서다
2000년대 들어 배꼽에서 가슴골, 어깨 등 신체 여러 부위를 돌아다니던 노출의 코드가 올해는 하반신에 맞춰졌다. 하반신 노출은 여성은 물론 남성 패션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니스커트는 물론 봄부터 진브랜드를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스키니 팬츠(통이 좁아 하체의 곡선을 그대로 노출하는 바지), 레깅스 등은 모두 하체의 곡선을 드러내는데 기여했다.
44사이즈에 대한 강박도 스키니 진부터 시작했다. 상체의 볼륨은 유지하되 하체는 골반 뼈가 도드라질 정도로 말라야한다는 관념이 공공연히 유통됐고, 해외 패션계가 말라깽이 모델의 아사(餓死) 사건을 통해 지나친 다이어트에 경고음을 보낸 것과 아랑곳없이 국내는 여전히 ‘마른 몸이 멋스럽다’는 스타일 공식을 신봉했다.
▲ 가짜 명품, 허영의 불꽃을 농락하다
세계 50대 명품 백화점에 입점됐고 힐러리 클린턴과 할리우드 스타 기네스 팰트로가 애용한다던 화장품 쓰리랩, 180년 전통을 자랑한다던 시계 지오모나코와 유럽 왕실전용 시계로 애용된다던 스위스시계 빈센트 앤 코 등 소위 ‘명품’마케팅에 나섰던 제품들이 하나같이 가짜로 밝혀져 럭셔리 브랜드 업계를 바짝 긴장시켰다.
유명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이 협찬이라는 이름으로 무료 제공받은 것은 물론 대기자 명단이 100명에 이르렀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명품’에 안달하는 우리 사회의 속물주의가 여실히 드러난 한 해. 가짜 명품 사건에 놀란 가슴은 중국발 SK2 화장품의 중금속 함유 소식에 백화점에서 매장을 철수시키고 환불사태를 벌이는 촌극을 빚었다.
▲ 미니멀리즘, 돌아오다
‘과하면 기운다’는 속담이 패션계 만큼 정확히 들어맞는 곳이 또 있을까. 한동안 계속됐던 장식성 강한 맥시멀리즘 패션이 올해 들어 미니멀리즘에 완전히 백기를 들었다.
로맨티시즘 시대의 달콤하고 화려한 색상이나 야들야들한 레이스와 러플 장식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 장식 보다 소재와 패턴을 통한 건축적 디자인을 중시하는 경향은 모노톤의 색감과 1980년대 일본디자이너의 작업에서 영감을 얻은 전위성으로 극대화, 세계적으로는 깔끔한 정장 느낌이 선호된 것과 달리 국내서는 레깅스 위에 치마, 그 위에 롱 니트 등 옷차림의 기본틀을 깨는 겹쳐입기(레이어드)가 성행했다.
▲ 남자, S라인을 탐하다
효리의 허리선을 탐하는 남자들이 크게 늘어난 것도 주목할만한 현상. 메트로섹슈얼 위버섹슈얼 크로스섹슈얼로 진화를 거듭하던 남성상은 급기야 여성의 전유물이었던 ‘S라인’을 남성패션에 도입시켰다. 갤럭시 마에스트로 등 유명 신사복이 다투어 허리선을 잘록하게 표현한다는 S라인 제품을 출시했다.
▲ 아줌마, 패션시장의 큰손으로 뜨다
좀처럼 주목받지 못했던 30대 후반 40대 이후 중장년 여성들이 패션시장의 신천지로 각광받았다. 몸매 가꾸기가 일상화하면서 20대의 사이즈를 유지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겨냥한 새로운 여성복군이 활기.
크로커다일레이디의 성공에 힘입어 역시 30,40대를 겨냥한 샤트렌, 올리비아로렌, 테레지아, 지센 등이 속속 등장했다. 패션 대기업인 LG패션이 모그를 통해 감각과 경제력을 겸비한 30대 이후 여성들을 공략, 프리미엄 브랜드로 안착한 것도 뉴스였다. 일본과 미국에서도 전후 베이비부머 세대를 중심으로 중장년층 대상 패션상품이 미래의 블루오션으로 각광받는 추세라 아줌마 파워는 갈수록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밖에도 올 한해 패션산업계는 G마켓과 옥션, 디엔샵, 인터파크, 엠플 등 온라인 쇼핑몰의 급성장이 두드러졌다. 유행을 민감하게 반영하면서 값은 싼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 젊은 유행선도자들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온라인 패션쇼핑몰의 인기가 수직상승한 결과. 패션산업이 IT와 가전 등 다양한 산업군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도 주목할만하다. 앙드레 김이 삼성전자 가전제품을 디자인하고, 휴대폰에 패션성을 접목한 상품이 다투어 출시됐다. 패션의 부가가치를 한껏 자랑한 한 해였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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