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한국시간) 육상 남자 110m 허들 결승이 벌어진 칼리파 스타디움. 여유 있게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세계기록보유자 류시앙(23ㆍ중국)은 관중들의 시선을 잔뜩 의식하며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몸에 두른 채 트랙을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관중석 한 쪽에 모여 있던 중국 관중만 잠시 환호성을 질렀을 뿐 나머지 관중은 ‘본체만체’였다. 류시앙은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며 미소 지었으나 분위기는 ‘썰렁’하기만 했다.
이따금씩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그것은 류시앙의 몫이 아니었다. 같은 시간 필드에서 벌어지고 있던 남자 세단뛰기와 여자 장대높이뛰기에 출전한 인도 선수들을 격려하는 박수였다. 트랙을 반쯤 돌던 류시앙은 관중들의 반응이 시큰둥하자 멋적은 듯 터벅터벅 걸어와 취재진의 인터뷰에 응했다. 카타르 도하에서 벌어진 ‘류시앙의 굴욕’이다.
지난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로 “황인종은 육상 단거리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낼 수 없다”는 서구 육상계의 편견을 보란 듯이 깨뜨린 월드 스타 류시앙은 정작 아시안게임에선 ‘찬밥 신세’였다.
이유는 육상 경기장에 모인 인도의 팬들 때문이다. 경기장 관중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인도인들은 류시앙과 같은 스타에겐 관심조차 없었다. 오로지 관심은 자국 선수들의 승리에만 쏠려 있었다.
인도 관중들의 이런 응원 방식은 지난 9일 벌어진 한국과 일본의 테니스 남자 단체전에서도 드러났다. 인도팬들은 이형택이 뛴 한국을 응원하더니 잠시 후엔 일본 선수들을 응원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남자 단체 결승전 이후 벌어지는 인도와 대만의 여자 단체전에 출전하는 ‘인도판 샤라포바’ 사니아 미르자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였다. 아무나 빨리 이겨서 경기를 끝내 달라는 뜻.
1974년 테헤란 대회 이후 32년 만에 중동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그러나 아직까지 아시아의 관중은 월드 스타들의 수준 높은 플레이를 즐기는 여유보다는 맹목적인 ‘우리편 응원’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도하(카타르)=한준규 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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