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개발을 통한 주택공급 확대와 대출규제 강화를 골자로 한 ‘11ㆍ15대책’이 발표된 지 한 달째로 접어든다. 들끓던 부동산시장은 일단 소강상태에 접어든 모습이지만, 기조적 안정국면인지, 아니면 계속된 오르막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인지는 쉽게 판단키는 어렵다. 본보 산업부 전태훤 기자가 지난 11일 서울 재건축단지 인근 한 공인중개업소에서 일일근무를 하며 시장흐름을 직접 점검해봤다.
재건축 아파트가 밀집한 서울 강동구 고덕동 고덕주공2단지 내 고일공인중개사무소. 7개 단지에 총 9,030가구가 모인 이 일대는 서울의 대표적 재건축 추진 단지다. 재건축 프리미엄을 타고 그 동안 큰 폭의 가격상승을 거듭했으며, 실수요자는 물론 투자자들의 입질도 잦았던 곳이다.
오전 9시30분쯤 고일공인 허봉욱 사장과 함께 사무실에 출근했다. 이어 계속해서 울리는 전화벨. 대부분 시세와 동향을 묻는 인근 아파트 주민의 전화였다.
허 사장에게 11ㆍ15대책 전과 후를 물었다. “추석 직후엔 정말 대단했어요. 11월초까지는 정말 호떡집에 불이라도 난 듯 서로 사겠다고 몰려들어 순식간에 1억원 이상씩 값이 뛰기도 했지요. 이 일을 시작한 뒤로 그렇게 값이 뛰는 것은 처음 봤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11ㆍ15대책이 나온 뒤론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전형적인 눈치장세에요. 매수자나 매도자 모두 극도로 관망하면서 최근 한달 새 올랐던 가격이 많게는 50%까지 빠졌어요. 요즘은 그냥 가격동향이나 전망을 묻는 전화가 대부분입니다.”
정오가 될 때까지 사무실을 직접 찾은 매수ㆍ매도자는 하나도 없었다. ‘눈치보기 장세’가 확실했다. 10~15분에 한 통 정도씩 문의전화만 꾸준히 걸려왔을 뿐이다.
오후 2시. 허 사장은 전날 받았던 매수 의뢰 건으로 매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출 규제 때문에 그런데 6억원 이하로 맞춰주면 거래가 될 거 같은데요.”(허 사장) “6억 이하라니요. 그래도 시세만큼은 받아야죠. 급할 것도 없는데 좀 더 두고 봅시다.”(매도자)
허 사장과 매도자간의 실랑이는 계속됐다. 허 사장은 몇 차례 가격 조정을 시도했지만 결국 조율에는 실패. 허 사장은 “요새는 6억원이 계약 성사의 기준”이라고 귀띔했다.
6억원의 근거는 이랬다. 고덕 주공 단지들은 이미 투기지역에 포함돼 6억원 초과 주택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시행되고 있는 상황. 다시 말해 6억원 초과아파트는 대출 받아 집사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더구나 은행들까지 주택담보대출 규제에 나서면서, 이래저래 매수수요는 6억원 이하로만 집중되는 상황이다.
오후 3시쯤 시세 확인차 사무실에 들른 한 주민에게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지 물어봤다. “사려는 사람들이야 값이 더 떨어지길 기다리겠지만 솔직히 우리는 그렇게 생각 안해요. 더구나 내년엔 선거도 있는데 어쨌든 값이 빠지기야 하겠어요?”
허 사장도 비슷한 분위기를 전했다. “재건축 단지 입주자들은 어떻든 차기 정부가 재건축 규제를 완화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섣불리 집을 팔려고 하지 않는 것이지요. 반면에 매수자들은 대부분 좀 더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입장이고…. 결국 매수자와 매도자의 기대방향이 다르니까 거래가 실종되고 있는 것입니다.”
허 사장이 지난 한달간 성사시킨 매매계약은 고작 2건. 결국 이날도 50여통의 전화만 받은 채, 결국 매매계약서는 한 통도 쓰지 못했다.
지금 같은 눈치장세는 이사철이 시작될 내년 봄까지는 계속될 것으로 보였다. 이 사이 매도자들의 기대심리가 꺾인다면 집값은 하향안정기조로 접어들겠지만, 반대로 기대심리가 현실로 확인된다면, 내년 봄 이후 추가급등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금 부동산 시장은 대세안정이냐 추가상승이냐를 결정할 절체절명의 갈림길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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