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출신인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는 과거 "북한은 미국의 첩보활동 사상 최대 실패"라고 걱정했다고 한다. 위성정찰 등 첨단 정보수집 활동에도 불구하고 CIA 활동에 핵심적인 정보요원을 북한 현지에 두지 못하는 원천적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정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크게 달라졌다.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활동에 따라 세계식량계획(WFP) 등의 많은 전문가들이 식량사정과 분배상황을 살피기 위해 북한 전역을 방문, 사회 전반에 관한 생생한 정보를 얻으면서 오랜 공백을 메운 것으로 알려졌다.
■ 그만큼 대북 식량지원과 분배는 국제적 감시 아래 진행됐다. 실제 WFP와 관련 전문가들은 대북 식량지원이 아프리카 등 세계 어느 곳보다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이를테면 해묵은 주장처럼 북한이 지원식량을 군량미로 전용하고 주민에게 제대로 분배하지 않았다면 혹독한 식량난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란 얘기다.
이런 마당에 최근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라는 민간단체가 탈북자 1,300명을 조사한 결과라며 군량미 전용의혹을 새삼 제기한 것에 눈길이 갔다. 탈북자 절반이 대북 식량지원을 모르고 있었으며, 아는 이들도 3%만 지원식량을 받은 적이 있다는 내용이다.
■ 국제사회가 10여년간 북한 인구의 30%를 먹여 살릴 만한 식량을 지원했지만 탈북자 대부분은 군량미로 전용됐다고 생각한다는 대목도 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이 대북 지원정책을 비판하는 논거로 삼은 이 단체의 주장은 조사ㆍ통계의 상식을 벗어난 엉터리라는 느낌이 앞선다.
식량지원 사실을 알고 모르고는 혜택을 받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을 터인데도, 북한 주민의 1.5% 정도에게만 지원식량이 돌아간 듯 주장하는 것은 애초 허망한 논법이다. 대북 지원에 비판적인 이들은 무슨 소리냐고 언성 높일지 모르나, 감정적 반응에 앞서 전문적 평가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 끝내 미심쩍다면 전문가들의 간단한 설명을 참고하는 게 좋겠다. 북한이 외부 지원식량을 군량미로 쓰면 자체 생산식량에서 주민에게 돌아갈 몫이 늘어난다.
반대로 지원식량 전부를 주민에게 나눠주면 자체 생산량을 군량미로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러나 저러나 마찬가지라는 얘기이고, 따라서 군량미 전용 논란은 부질없다는 결론이다. 대북 지원정책을 논란하더라도 허망한 군량미 얘기는 그만 했으면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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