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억 아시아인의 스포츠 축제인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이 감동과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연출하며 종반전을 맞고 있다. 중국이 금메달을 독식하고 있는 반면 메달 하나 구경하지 못한 나라도 10여 개국이나 된다. 이번 대회는 박태환을 비롯해 각 4관왕에 등극한 남자 체조의 양웨이, 여자수영의 팡지아잉 등이 MVP를 놓고 경합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다관왕 못지 않게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선수들의 뒷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독자들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개헤엄'으로 유명해진 에릭 무삼바니(적도기니)를 기억할 것이다.
당시 수영 경력이 고작 9개월에 불과했던 무삼바니는 자유형 100m 예선에서 사각 수영복과 고개를 물 밖으로 내미는 '개헤엄'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빠져 죽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헤엄쳤다"는 그는 결승선을 10m 남기고는 잠시 쉬었다가 레이스를 다시 시작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우승자 기록 47초84에 1분 이상 뒤지는 형편 없는 1분52초72였지만 얼굴에는 '해냈다'는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도하 아시안게임에도 '제2의 무삼바니'가 있다. 6일 열린 수영 남자 200m 개인혼영 예선 2조 경기에 들어서는 선수들을 지켜 보던 관중들은 깜짝 놀랐다. 훤칠한 키에 늘씬한 몸매를 가진 선수들의 맨 앞에 선 자그마한 체구의 까까머리 소년 때문이었다.
그는 올해 만 10세가 된 이라크 소년 아메르 알리. 다른 선수에 비해 한 뼘은 작아보이는 키 1m55cm에 44㎏에 불과한 소년이었다. 출발 총성과 함께 물속으로 뛰어든 그는 수영모도 없었지만 젖 먹던 힘을 짜내 팔을 내뻗고 발을 찼다.
2분55초32. 7위로 골인한 인도 선수보다도 40초가 늦은 꼴찌. 알리의 예선 성적은 23명중 22명, 그것도 다른 나라 선수가 기권한 덕분이었다.
이라크는 20년 만에 아시안게임에 얼굴을 다시 내밀었지만 전화(戰禍)를 겪고 있어서 대표 선수를 제대로 선발해 파견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알리는 "언젠가 일본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기타지마 고스케나 박태환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태환도 중학생 신분으로 출전한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는 물살 한 번 가르지 못하고 부정출발로 실격 당하자 부끄러움에 화장실에 숨어 있기 까지 하는 등 좌절의 순간이 있었기에 이번 영광이 더욱 빛날 수 있었다.
'꼴찌'들의 아름다운 질주는 마라톤에서도 이어졌다. 내전 중인 동티모르의 소아레스 알린이 그 주인공으로 풀코스 첫 공식 도전이었다. 3시간 가까운 사투 끝에 절룩거리는 다리를 끌고 골인지점을 통과한 그는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무척 행복합니다"고 말했다.
기록은 2시간58분28초. 동호인들이 흔히 목표로 삼는 '서브 -3(3시간 이내 완주)'에 겨우 턱걸이 했다. 자신이 동티모르 최초의 마라토너라고 한 그는 "국가를 대표해서 뛰는 첫 마라토너인 만큼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냥 계속 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는 소박한 그의 소망 앞에 오일달러로 금메달을 만들어낸 케냐 출신의 카타르 귀화선수는 작아질 수 밖에 없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1등만 주목한다. 그러나 꼴찌가 있고 2,3등이 있기에 1등은 더욱 빛나는 것이다. 단지 '낙오자'라고 낙인 찍지 말고 꼴찌에게도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보낼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의 여유가 아쉽다.
여동은 스포츠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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