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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12월에 읽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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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12월에 읽는 시

입력
2006.12.11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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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용택의 고향인 전북 임실군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 근래 이 섬진강가는 강원 영동지역과 더불어 폭설이 자주 내리는 지역으로 바뀌었다.

지난 겨울 그가 전주의 아파트에 있을 때,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용태가아, 눈이 많이 와서 우리집 헛간 무너질라고 한다." 그가 말했다. "어머니, 안 무너지게 기둥 꽉 잡고 계세요." 웃으면서 말했지만 부드러운 눈도 보름 동안 계속 오니까 걱정이 많이 되더라고 했다. 헛간은 무너지지 않았다.

● 황량한 계절 건너 가기

임실에 폭설이 자주 내리는 까닭을 기상청에 물어 보았다. 이메일 답을 받았다. '강하게 발달한 대륙고기압의 영향으로 찬 공기가 서해상을 통과할 때, 상대적으로 따뜻한 해수면을 만나 수증기를 응결시켜 눈구름대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짐. 이 눈구름이 호남 내륙으로 들어오면서 호남 서해안과 전라남북에 많은 눈이 내렸음.' 한편으로는 지구 온난화의 여파같아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12월이 되어, 날씨는 침울하고 기온은 차갑다. 올 가을 늦게까지 나무에 매달려 있던 잎새들도 눈비를 맞아 마침내 대지 위를 뒹굴고 있다. 거리에서는 불우이웃 돕기로 눈금을 밀어올리는 '사랑의 온도탑'이 제막 되고, 자선냄비 옆에서는 구세군의 딸그랑거리는 모금 종소리가 눈물겨운 바 있다.

평생 섬진강가를 떠나지 않은 김용택은 떠나지 않은 그 자체로 보통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잎을 떨군 나무를 보면서 궁핍한 생애, 무욕의 삶을 살다간 전 시대의 시인 박봉우 김종삼 천상병 등을 떠올린다.

지금도 삶의 오지에서 세상의 영욕과 상관없이 시를 쓰는 시인이 많다. 세모의 한낱 감상이나 위선일지라도, 가난한 시인이 베푸는 넉넉한 시의 양식으로 삭막한 시대, 황량한 계절을 건너가고 싶다. 그들의 시를 통해 겨울나기의 의미를 반추하고 싶다.

유승도는 충남에서 태어나 지금은 강원 영월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시인이다. 대학 졸업 후 오랫동안 막노동판과 연안어선 선원, 탄광 광원 등을 전전하며 방황해온 그의 시는 이제 일체의 집착을 떨쳐낸 듯 아름답다.

시를 보면, 그는 봄이 되어 형님과 누님, 형수님께 부쳐드리려고 두릅을 딴다. 혹 좋은 일 있으면 뵙는 길에 전해드리려 했으나, 세월은 그를 비켜간다. 끝내 부쳐드리지도 못한 것은 한 몸 추스르지도 못하고 삼십 여년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혹여 두릅을 받고 자기를 염려할까 저어되기 때문이다.

강원도 산길에서 쓰여진 그의 시는 주로 자연이 소재다. <저 하늘거리는 풀을 보고 나는 갈대가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다 고개 숙인 꽃은 여전히 예쁘고 날렵하게 뻗은 잎도 흐트러짐이 없다 몸을 곧추세운 채 겨울바람 속에서도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는 저 야생초를 죽었다고 봄날의 파릇함이나 여름의 푸르름, 가을의 온화한 형상만이 갈대였다고> ('겨울 들판을 걸으며' 전문)

● 이면우 유승도의 소박함

이면우는 대전에 사는 보일러공이다. <대전서 낳고 자라서 여러 번 밤차 타고 도망쳐 봤으나 종내 대전서 밥 벌고 혼인하고 아이 키우며> 쉰 넘게 살아온, 매우 가정적인 시인이다.

<보일러 새벽 가동 중 화염투시구로 연소실을 본다 고맙다 저 불길, 참 오래 날 먹여 살렸다 밥, 돼지고기, 공납금이 다 저기서 나왔다 녹차의 쓸쓸함도 따라나왔다 내 가족의 웃음, 눈물이 불길 속에 함께 타올랐다 (중략) 나는 나지막이 말을 건넨다 그래, 지금처럼 나와 가족을 지켜다오 때가 되면 육신을 들어 네게 바치겠다.> ('화염 경배' 중에서)

쓸쓸함과 소박한 삶을 노래하는 시들은 한 해의 끄트머리마다 맞는 어둡고 쓸쓸한 정서를 어루만져 준다. 작은 생명에의 외경심 또한 겸허한 성찰로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욕망이나 집착은 얼마나 하찮고, 허망하고, 비평화적인 것인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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