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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는 삶, 따뜻한 겨울/그룹홈 꾸린 김은광·윤설희씨네 "행복화음 들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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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는 삶, 따뜻한 겨울/그룹홈 꾸린 김은광·윤설희씨네 "행복화음 들리세요"

입력
2006.12.08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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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업어줘~, 형아~ 업어줘~.”

7일 오후 4시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한 평범한 가정집. 학교에서 돌아온 맏형 주영(10ㆍM초등 3년)이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종빈(6)이가 매달린다. “너보다 어린 동생도 앉아서 책 보고 있는데 자꾸 어리광 피울 거야?” 누나 수빈(9ㆍM초등 2년)이가 핀잔을 주지만 종빈이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형이 씻고 와서 업어줄게. 우선 누나랑 놀고 있어.” 주영이가 손가락을 걸자 종빈이는 그제서야 싱글벙글 신이 나 막내 환빈(4)이 옆에서 동화책을 펴 든다.

절로 웃음이 번지는,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다. 하지만 여느 형제보다 우애가 도타워 보이는 주영이와 수빈이 종빈이 환빈이는 모두 부모가 다르다. 주영이네 집은 저마다 어려운 사정 탓에 친부모와 함께 살 수 없는 아이들이 한 데 모여 오순도순 생활하는 ‘그룹홈’이다.

그룹홈은 일반 주택에서 7명 이하의 어린이가 자원봉사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대안 가정이다. 전국 176곳에서 1,300여명의 어린이들이 가정의 따뜻함을 느끼며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주영이네는 김은광(54)ㆍ윤설희(52)씨 부부가 ‘큰 아빠’ ‘큰 엄마’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고 있다. 김씨 부부는 1970~80년대 ‘논두렁 밭두렁’이란 이름으로 ‘다락방’, ‘외할머니댁’등 정겨운 노래를 발표해 큰 인기를 끌었던 통기타 듀엣이다. 큰 딸은 결혼했고 둘째딸(17)과 함께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김씨 부부는 1997년 외환위기로 음반시장이 위축되면서 어린이집을 운영했다. 이듬해 겨울 울먹이며 찾아 온 한 남자의 아이들을 ‘떠맡으면서’가정이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룹홈은 2000년 시작했다.

윤씨는“고아원 등 대형시설과 달리 부모와 자식, 형과 동생 등 가족 간 역할 모델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어 학교는 물론 사회생활 적응도 빠르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친부모 슬하를 떠난 아이들이긴 하지만 얼굴에 구김이 없다. 학교 생활도 최고다. 주영이는 “여러 동생들과 지내온 덕분이지 다른 친구들보다 리더십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며 활짝 웃었다.

주영이와 동갑인 ‘공동 장남’ 현빈(10ㆍM초등 3년)이도 “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다 보니 내 실력도 쑥쑥 느는 것 같다”고 자랑했다. 주영이와 현빈이는 학교에서 각각 반장을 맡고 있고 공부도 늘 1등이라고 한다.

김씨 부부는 “싸우지 않고 올곧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동안 부모님들도 형편이 나아져 아이들을 다시 데려갈 수 있다면, 그래서 여기서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덧붙였다.

김씨 부부와 아이들의 생활비는 빠듯하다. 공연 수입, 노래 저작권료와 정부 보조금이 있지만 교육비 등을 생각하면 힘에 부치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경제적인 문제로 아이들의 얼굴에 그늘이 지게 할 수는 없잖아요. 애들을 위해서 라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요.” 김씨 부부는 “그룹홈 아이들을 위해 9일 오후2시 서울 종로구 제일은행본점 앞에서 기금 마련 콘서트를 연다”며 정성스럽게 기타를 닦았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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