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의 사진가 최민식(78)씨가 라이카3F를 달랑 매고 부산 자갈치시장으로 달려간 게 1957년이다. 이래로 그는 사진이라는 정직한 형식과 흑백의 단순한 표현으로, 우리가 살아온 세상과 인간의 풍경을 담아왔다. 그 세월이 올해로 꼭 50년이다. 은 그의 사진 인생 반백 년을 결산하는 사진집이다.
지난 해 부산시립미술관이 그의 작품 30점을 일괄 구매(1,400만원)하기 전까지, 그는 단 한 점의 작품도 팔지 못한 직업 사진가였다. 소외와 가난이라는, 정치ㆍ경제의 그늘만 찾아 다닌 탓일까. 지난 권력은 그를 집요하게 괴롭혔고 그의 예술 역시 ‘상품’이 되지 못했다. 그는 사진처럼, 자신의 사진 속 풍경처럼, 정직하게 가난했다. “쌀 사다 놓으면 연탄 떨어지고, 연탄 채워놓으면 쌀 떨어지고, 어렵사리 둘 다 사놓고 보면 필름 떨어지고….” 그런데 왜,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토록 지독하게 저 풍경 속으로 끌어들였던 것일까.
1969년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찍힌 이 사진을 보자. 제법 커보이는 아이가 10살쯤 되는 소녀의 등에 업힌 채 엄마의 젖을 빨고 있다. 여전히 젊은 엄마는 남은 젖가슴까지 아이의 손에 내맡긴 채 그 아이를 망연히 내려다보고 서 있다. 명암의 깊이와 그늘로 보아 점심나절이다. 배고픔에 칭얼대는 동생을 동여 업고 소녀는 저 여린 다리로 휘청대며 엄마의 일터로 갔을 것이다. 비린 것들을 만진 손이 아이들에게 닿지 않게 하려는 것일까. 엄마는 손을 허리 뒤로 돌린 채 가슴만 불쑥 내밀고 있다. 저 어린 것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분고분해야 할 엄혹한 노동의 제단 앞에서, 소녀의 머리도 쓰다듬고 아이의 볼도 토닥거려 주고싶은 모성의 욕망을 억누르려는 인종의 몸짓으로도 보인다. 저것일까. 저 무심한 듯 애틋한 사랑이 그를 붙든 것일까.
7일 오전 전시 준비로 바쁜 그를 찾아가 물었더니 그는 “결국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우리가 인간의 존엄을 말할 때 머리와 가슴으로 그리게 되는 상(像)이 있잖아요. 그것이 현실과 얼마나 멀리 또 가까이 있는지 사진을 통해 말하고 싶었어요. 그것이 저를 지금껏 지탱한 힘입니다.”
사진 속 가난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그의 사진 속 풍경들은 가난의 풍경이 아니라 지난 세월의 풍경, 시간의 풍경이다. 사진 속 다양한 표정의 사람들이, 가난의 풍경, 시간의 풍경에 실려 한 컷 한 컷 역사의 풍경을 이루며 한 시대를 증언한다.
그가 포획한 역사의 시간들은, 비록 멈춰져 있지만 정물화 하지 않는다. 그는 피사체들을 붙든 시간의 맥락을 끊지 않음으로써, 다시 말해 연출하지 않음으로써, 장면의 앞과 뒤로 이어진 삶의 이야기를 다치지 않게 전한다. 그는 플래시도 삼각대도 없이, 다큐멘터리 사진의 정석대로, 피사체와 맨몸으로 정면승부 해왔다.
감회를 묻자 그는, 월남하기 전 황해 연안 고향 시절의 이야기를 꺼냈다. “일곱 식구가 한 해 소작을 하면 7개월 양식이 나와요. 나머지 5개월은 막노동이죠. 사진이 힘들었어도, 그 때만 했겠어요.” 그 긴 세월동안 그를 붙든 것은, 그 자신의 가난 체험, 굶주림의 기억이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는 그 자신의 모습을 찾아 찍어온 것일 수도 있다. 여든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언뜻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의 어떤 표정들과 닮아있는 듯도 했다.
사진집은 풍속과 생활사적인 사진들을 모은 1부, 자갈치시장 풍경을 모은 2부, 거지 등 소외된 자의 풍경을 담은 3부, 인간 희로애락의 표정을 담은 4부로 나뉘어 그의 대표작 250여 컷이 실려있다. <인간 최민식 사진50년 사진전> 은 17일까지 서울 사간동 <금호갤러리> 에서, 27일부터 내년 2월19일까지는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금호갤러리> 인간>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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