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밝힌 '일심회'의 혐의는 구체적이다. 전 국정원장의 간첩단 규정발언, 재야시민단체의 반발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실체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으나 검찰은 북한 지령을 받아 이적단체를 만들고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 전달한 간첩사건으로 결론 내렸다.
'6ㆍ15선언 이후 최대 간첩사건'이라는 이 사건의 공판과정에서 구체적 행위별로 법 적용의 타당성 여부에 대해 다툼의 여지는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제시된 증거자료나 지금의 공안수사 환경 등으로 볼 때 혐의사실 자체는 왜곡됐을 개연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주목되는 건 간첩행위의 변화양태다. 지하당 등 폐쇄조직을 통한 활동 대신 기존 정치권을 직접 무대로 삼으려 시도하고, 이메일 공개사이트를 통해 지시, 보고가 이뤄진 방식이 그것이다. 우리의 국가적 정체성 혼란이 실로 우려할 만한 수준임을 알려 주는 일이다. 간첩행위가 거의 공개적으로 이뤄져도 일반인들로부터 별다른 거부감이나 경계심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 정도가 됐다는 것이다.
이들이 시민사회운동에 틈입해 무조건적인 반미정서를 유발하고 격화시키려 한 시도도 이런 혼란스러운 인식의 토양에서 가능한 것이다. 특히 어처구니없는 것은 386운동권 세대의 주도적 역할이다. 언필칭 민주화운동 경력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명백한 독재체제와 그 수령을 찬양하는, 이런 반지성적이고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차제에 간첩행위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인 국가기밀 수집 탐지 등에 대한 규정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처럼 거의 완전하게 정보가 공개, 교류되는 사회에서 기존 규정으로 규율할 국가기밀이란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렵다. 정보의 질과 함께, 정보수집·탐지의 의도나 이용목적 등이 규정에 고려돼야 할 것으로 믿는다.
남북관계 개선과, 우리가 지켜야 할 국가체제나 안보적 현실은 분명하게 구별돼야 한다. 이 사건이 정치권을 포함한 일반 국민 모두가 국가적 정체성과 안보인식을 새롭게 가다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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