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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환율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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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환율의 악몽

입력
2006.12.08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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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9월 영국의 파운드화가 투기세력의 공격으로 대폭락하기 시작했다. 인위적으로 파운드화를 높게 떠받쳐 온 영국 중앙은행은 28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을 풀어 파운드화를 무제한 사들였다. 이자율을 하루 두 차례나 올리는 극약처방도 썼다.

그러나 결국 투기세력의 공격에 무릎을 꿇고 유럽 단일통화체계(ERM)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했다. 시장 개입으로 날린 돈은 33억 파운드(6조3,000억원). 공격을 주도한 투기꾼은 단번에 10억 달러를 챙겼다. 최근 재미동포 여성과 재혼, 화제가 됐던 '월가의 전설' 조지 소로스다.

▦ 환율의 파괴력은 1997년 외환위기 과정에서 우리에게도 피눈물을 흘리게 했다. 국제수지 적자가 누적되고 외국자본이 이탈하면서 원화 가치가 떨어졌지만 김영삼 정부는 외환보유액을 동원해 무리하게 환율을 지탱했다. 결국 외환보유액이 바닥 나면서 외채를 못 갚게 되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로 들어가야 했다.

달러 당 900원대이던 환율은 1,700원대까지 치솟았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도 환율에서 시작됐다. 1985년 플라자합의로 엔화가치가 급등하자, 일본 정부는 기업에 미칠 충격을 줄이고자 콜금리를 급격히 내렸고, 이것이 부동산 버블을 불렀다.

▦ 최근 원ㆍ달러 환율이 외환위기 이전 수준인 910원대까지 떨어지면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경제를 이끌어가는 수출에 심대한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자연히 정부가 개입해서라도 환율 하락을 막아야 한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영국의 사례가 보여주듯 환율 방어에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 달러를 사들여 싸게 팔아야 하기 때문에 환차손이 발생하고, 국채를 발행해 달러 매입 비용을 충당하는 과정에서 이자비용도 만만치 않다.

▦ 올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이는 외국환평형기금의 2003년 이후 누적적자가 18조원에 이른다. 원화를 주고 달러를 사는 과정에서 통화량이 늘어나는 부작용도 심각하다. 외환위기 직후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이규성씨가 최근 <한국의 외환위기> 라는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저서를 내놓아 화제가 된 바 있다.

저자는 외환위기의 가장 중요한 교훈으로 경제 변수들의 '올바른 값'을 들었다. "환율이 올바른 자리에서 이탈되어 있는데도 방치하면 이를 시정하려는 시장 참가자들의 공격을 받게 되며, 그 정도가 심하면 외환위기가 온다"는 의미심장한 지적이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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