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원회(위원장 조창현)가 국무조정실이 지난 6일 입법예고한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방송의 독립성 훼손을 이유로 전면 거부키로 했다. 이 법안에 대한 야당과 시민단체 등의 반발도 거세 내년 입법 및 방통위 출범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방송위는 8일 낮 12시 긴급 전체회의를 열고 입법예고안 수용 불가 방침을 확정했다. 이어 최민희 부위원장은 오후 3시에 열린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융추위)에 참석, 이 같은 방침을 전한 뒤 20여분만에 퇴장했다. 방송위는 또 국조실 산하 융추위 지원단이 입법예고 과정에서 방송위를 철저히 소외시킨 데 대한 항의의 표시로 지원단에 파견된 직원들을 철수시켰다.
방송위가 “방통융합 논의의 판을 깬다”는 비난을 각오하면서까지 초강경 대응에 나선 것은 입법예고안이 ‘직무상 독립된 합의제 행정기관’이라는 융합기구의 기본전제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으며, 일부 조항의 수정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방송위는 이에 따라 입법예고안을 폐기하고, 대신 1999년 방송개혁위원회가 현행 통합방송법을 직접 만든 것처럼 융추위에서 폭넓은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법안을 새로 성안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방송위가 지적한 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방통위의 직무상 독립이 전혀 보장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위원 5명 전원을 대통령이 직접 임명토록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방송위는 임명 과정에서 국회 동의 또는 추천을 거치는 한편, 직무 수행 및 예산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현행 방송법처럼 ‘위원은 직무상 외부의 어떠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기획예산처가 예산을 감액할 경우 위원장 의견을 듣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방송위는 또 입법예고안대로라면 방통위가 융추위에서 합의한 ‘독임제 요소를 가미한 합의제 행정기관’이 아니라 ‘합의제 외양을 띤 사실상의 독임제 행정기관’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방통위원들이 합의 절차에 따라 심의ㆍ의결하는 사항을 법에 명시하고 그 외의 직무를 위원장(장관급)이 처리할 수 있도록 한 것 등이 그 예다. 더욱이 방통위 소관 사무에 방송ㆍ통신과 관련 없는 우정제도까지 포함시켜 사실상 방송위를 정보통신부에 흡수 통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게 방송위의 판단이다.
이는 야당 및 시민단체 등의 주장과도 맥을 같이 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은 입법예고 이후 즉각 반대 입장을 밝혔고, 전국언론노조와 민언련 등 언론 관련 단체들도 방송통신의 독립성 훼손과 합의제 취지 왜곡을 비난하는 성명을 잇따라 냈다.
그러나 방송위가 융추위 논의 및 입법예고 과정에서 독립성 확보를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뒤늦게 판을 깨려 한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융추위는 방송위의 법안 재성안 요구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방송위의 반발을 무시하고 법안 제출을 강행할 가능성도 높아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이희정 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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