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들어 미국 시장에서 가장 죽을 쓰는 현대자동차 모델은 베르나(현지명 액센트)이다. 지난달 현재 판매량은 3만1,976대로 전년 동기 대비(3만9,351대) 19%나 감소했다.
이유는 토요타의 배기량 1,500㏄ 야리스 때문. 베르나보다 630달러나 싼 야리스(1만1,825달러) 판매가 급증(11월말 현재 6만4,000여대)하면서 시장을 빼앗겼다.
만회하려면 가격을 낮춰야 하는데 여의치 않다. 베르나는 한국 울산공장에서 만드는데, 환율 하락으로 채산성이 나빠져 가격을 더 내리면 출혈수출이 불가피하다. 최근에는 2007년 모델 가격을 오히려 110달러나 올렸다.
#2. 쏘나타는 10월까지 미국 판매가 13만9,364대로 전년(10만9,512대)보다 27%나 늘었다. 경쟁 차종인 토요타 캠리가 39만8,379대에서 38만1,390대로 5% 가량 줄어든 것과는 대조된다.
품질이 좋아진 탓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환율 위험에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팔리는 쏘나타는 모두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된다. 인건비와 부품 등이 대부분 현지에서 달러로 결제되기 때문에 원ㆍ달러 환율의 변동이 쏘나타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우리나라 토종 자동차 업체인 현대ㆍ기아차그룹이 환율하락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미국 쏘나타 같은 일부 현지 생산차량을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되는 주요 차종의 경우 환율 하락에 따른 가격 경쟁력 약화로 미국과 유럽시장에서 점유율이 급감하고 있다.
6일 자동차업계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현대ㆍ기아차그룹은 전체 매출에서 수출 비중이 70%에 육박하기 때문에 원ㆍ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할 때마다 영업이익이 약 1,400억원 가량 감소한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777억원, 기아차는 621억원이 줄어든다는 게 대우증권 분석이다. 지난해말 달러당 1,040원이던 환율이 6일 920원 부근까지 하락한 것을 감안하면, 현대차와 기아차는 최근 1년간 앉은 자리에서 각각 9,324억원과 7,452억원의 영업손실을 본 셈이다. 토요타가 엔화약세 덕에 천문학적 이익을 내는 것과 사뭇 대조된다.
환율 하락 상황에서 현대ㆍ기아차그룹의 활로는 현지화 밖에 없다. 불리한 경영여건 속에서도 정몽구 회장이 직접 나서 해외에 공장을 짓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울산 1공장의 '클릭' 생산라인을 인도 공장으로 옮기고 대신 쏘나타를 생산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환율 하락의 충격을 흡수할 정도로 글로벌 생산체제가 갖춰지는 2008년 이전에는 다소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에서 차를 만들기는 하지만, 외국자본의 글로벌 네트워크에 편입된 GM대우나 르노삼성, 쌍용차에게 환율하락은 '강 건너' 얘기일 뿐이다. 국내에서 차를 만들어 수출하기는 하지만 미국 GM이나 프랑스 르노의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이뤄지는 '내부거래'이기 때문에, 환율 위험을 직접 부담하지 않는다.
환율하락은 국내 수입차 시장의 판도에도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 현대ㆍ기아차 관계자는 "엔화 환율 하락에도 불구, 최근 몇 년간 가격을 내리지 않은 일본계 수입업체들이 조만간 파격적인 가격 인하 공세를 펼 가능성에 대해서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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