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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모든 군인의 죽음은 군이 보살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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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모든 군인의 죽음은 군이 보살펴야

입력
2006.12.04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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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TV에서 18세기 초 나폴레옹에 맞선 대영제국 해군의 활약을 그린 영화를 보았다. 러셀 크로우가 엄격하면서도 지혜로운 함장 역을 맡은 영화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세 불리한 전투를 앞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초급사관을 해군 전통을 따라 수장하면서 모든 승조원이 경건하고 비통한 표정으로 애도하는 장면이었다.

이 대목을 관심 깊게 본 것은 며칠 뒤 자살 장병 유해를 어떻게 '처리'해야 옳으냐는 오랜 논란을 다룰 군 정책 토론회에 참석할 예정인 때문이다.

● 군 장병 자살은 군과 국가 책임

영화의 상상력이 실제 관행과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에 읽은 영국 소설에는 사랑에 좌절해 자살한 여인을 십자로 돌무덤에 매장하는 관습이 나온다.

자살을 죄악으로 여긴 종교적 인식에 따라 혼미한 영혼이 구제되기를 기원하는 동시에 자살자를 천대하는 징표로 삼은 듯하다. 영국은 1950년대 초까지 자살미수를 형사범죄로 다뤘다.

동서양에 공통된 이런 인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 정신의학은 자살을 단순히 사회적 유대의 틀을 벗어나는 자기파괴적 일탈행위로 보지 않는다. 겉보기에 현실도피이지만 지극히 복잡하고 난해한 동기로 인격이 말살될 두려움에 직면해 자기 정체성을 지키려는 절박한 방어행동으로 이해한다.

개인과 사회와 시대의 가치관과 신념이 복잡하게 얽힌 환경에서 고뇌와 갈등을 견디다 못해 어려운 선택에 이르는 것이다. 따라서 여느 죽음 못지않게 동정하고 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과학적 인식을 수긍하더라도 특수한 신분인 군 장병의 자살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물론 쉽지 않다. 신성한 국방의무를 짊어진 군인의 자살을 비겁한 현실도피로 여기는 한, 비난과 멸시가 당연한 처우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원초적인 생존본능을 누르고 죽음의 공포와 마주서는 자살행동을 선과 악의 사회적 잣대로 재단하는 것부터 살아있는 자들의 도덕률을 지키려는 이기심으로 지적된다. 특히 장병의 전인격을 통제하다시피 한 군과 국가가 그 엄격한 생존 조건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장병을 천대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사회 전체가 자살 장병의 고뇌와 인격적 존엄성보다 군의 위상과 존립근거를 소중히 여긴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군과 국가가 장병에게 전장에 나가 목숨 걸고 싸울 것을 강제하는 권한을 행사하는 만큼, 장병의 생명과 안녕과 복지를 돌볼 책임과 의무가 크다는 것은 자명하다.

구타와 학대 등 군의 책임이 명백히 입증되지 않더라도 군과 국가의 울타리 안에서 숨진 장병의 죽음은 군과 국가의 책임으로 인식하는 것이 절실한 이유다.

지금껏 자살 및 변사한 장병을 전사ㆍ순직 장병과 달리 제적 처리하고 유해는 유족에게 넘긴 관행이 옳은지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 자식을 군에 보냈다 잃은 유족의 원성을 위무할 방도를 고민하면서도, 그들이 바라는 국립묘지 안장은 충의를 기리는 국립묘지의 위상을 해친다고 여기는 고정관념이 아직 우세한 듯하다.

이 때문에 지난해 국방부가 자살장병 전용묘지 설치안을 제시한 것에서 오히려 후퇴, 각 군과 민간자문위원회는 군내 전용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지방자치단체 납골시설에 위탁하는 방안을 지지하고 있다.

● 국립묘지 안장 꺼리지 말아야

자살장병 전용 묘지든 납골당이든 자살자를 차별, 천대한 낡은 인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지자체 위탁은 군과 국가의 책임과 유족과의 분쟁을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 비록 소임을 다하지 못한 죽음이라도 유능하고 충직한 장병과 마찬가지로 예우하는 것이 군과 국가의 도리이고, 국민이 군을 너그럽고 명예로운 존재로 인식하는 데 도움될 것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외진 납골당에서 새삼 군을 원망하고 한탄하는 대신, 국립묘지에서 다른 부모들과 위안을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을 더 이상 꺼리거나 망설일 일이 아니라고 믿는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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