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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아멜리 노통브의 '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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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아멜리 노통브의 '황산'

입력
2006.12.01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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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아우슈비츠 TV쇼로 안내합니다아멜리 노통브 지음ㆍ이상해 옮김 / 문학세계사 발행ㆍ207쪽ㆍ8,500원

가을이면 생각나는 그 사람, 아멜리 노통브(39)가 찾아왔다. 해마다 낙엽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한 편씩 새 소설을 발표하는 이 부지런한 작가의 신작은 뜻밖에도 디스토피아의 암울한 미래상을 그린 우화소설. <살인자의 건강법> <적의 화장법> <두려움과 떨림> 등을 통해 엉뚱하고도 기발한 상상력을 선보인 노통브 특유의 잔인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소설세계가 이번 소설에선 정직할 정도로 어두운 흙빛 일색으로 변모했다.

소설은 시청률 제고라는 지상과제를 위해 ‘고통의 쇼’를 생중계하는 한 방송국을 통해 고통마저 소비재로 탈바꿈시키는 ‘신세기 아우슈비츠’를 그린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혈안이 된 한 방송사가 나치수용소를 재현해놓고 선량한 시민들을 무작위로 잡아들인다. 이름 대신 등록번호로 치환된 수용자들은 가혹한 간수들의 폭력과 착취에 시달리고, 프로그램은 CCTV라는 ‘천 개의 눈’을 통해 이 모든 악행의 장면들을 낱낱이 시청자들의 안방으로 배달한다.

프로그램의 절정은 경쟁과 탈락이라는 리얼리티쇼의 원리에 따라 수용소 생활을 견디지 못하는 포로들을 처형하는 장면. 이 야만의 파노라마가 방송되자 언론은 성토의 핏대를 세우지만, 시청자들은 열광적 환호를 보내며 높은 시청률로 프로그램에 보답한다. “시청자들이여, TV를 끄십시오. 가장 큰 죄인은 바로 당신들입니다! …살인자는 바로 당신들의 눈입니다.”(113쪽) 식물원을 산책하다 잡혀온 아름다운 여대생 CKZ 114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브레이크 잃은 야만의 질주는 더한 자극과 고통을 찾아 가속도를 높인다.

노출증과 관음증, 홀로코스트, 새디즘, 동성애, 지식인의 위선 등 첨예한 주제들이 성찬을 이루는 노통브의 이 소설은 ‘매년 신작을 내놓지 않아도 되니 힘겨우면 좀 쉬라’는 비아냥과 ‘미래주의적이고 반유토피아적인 우화’라는 옹호를 동시에 들으며 지난해 프랑스 문단에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노통브 자신은 소설 속에서 “창조가 이루어진 다음의 신의 임무처럼 작가는 작품의 결점을 지적하는 독자들과 맞서 끝까지 자신의 텍스트를 공개적으로 사랑하고, 칭찬, 야유, 무관심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인류의 종말론적 미래를 말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를 충분히 숙지하고 읽는다 해도, 이 새로울 것 없는 거대 담론과 억지스러운 상상력으로는 아무런 마음의 진동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은 지적해야겠다.

그건 그렇고, 소설을 읽으며 끊임없이 드는 의문 하나. 아무리 가상 상황이라지만, 경찰은 뭐 하는 거야? 방송국 사람들 안 잡아가고!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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