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적 권한을 지닌 대통령의 종신 집권을 보장하는 체제인 동시에… 국가의 자원 동원과 집행능력을 제고하는 체제'라는 서술을 담은 대안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은 현재 우리 사회의 시계가 거꾸로 돌고 있음을 입증하는 좋은 사례다.
그같은 서술 자체가 유신세대 또는 '대통령=박정희'라는 공식 속에 자라온 세대에게는 너무나 익숙해서, 우리 모두가 일순간 30년 전으로 홱 되돌아간 느낌을 준다.
● 넌센스 코미디 같은 대안교과서
이른바 뉴라이트(신보수) 계열의 교과서포럼에 속한 어느 교수의 대안교과서 시안은 마치 넌센스 코미디의 한 편을 보는 듯하다.
지난날 만원 버스의 운전기사가 손님을 싣자마자 홱 운전대를 꺾듯이, 기존 교과서의 좌 이념 편향을 바로잡기 위해 만들었다는 대안교과서는 우리 사회의 진로를 단숨에 우회전시키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물론 교과서는 자동차가 아닐 뿐 아니라, 어른들의 패거리 싸움에 우리 아이들을 볼모로 끌어들이는 꼴이어서 황당하기 그지없다.
중고교의 교과서는 쓰는 사람의 역사관이 표현되는 동시에 배우는 학생들의 교육적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양면성을 지닌다. 만약 기존의 교과서가 '붉다면' 대안교과서는 그 붉기를 엷게 해야 할 뿐, 무턱대고 '파란색'으로 덧칠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아무리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방하기 위한 수단이라도 교과서만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서 써야 한다.
더욱이 대안교과서의 역사관은 전혀 '뉴'하지 않다는 본원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단순히 과거로 회귀하자는 주장에 불과하며,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상식마저도 무시했다. 한마디로, 시대의 변화에 전혀 무감각했다.
지금으로부터 백여년 전 레닌에 의해 시작되고 지난 세기 말 모스크바 광장에서 붉은 기가 내려짐으로써 이념의 시대는 바야흐로 끝났다. 이미 21세기에 돌입한 오늘날 좌나 우나, 중도는 모두 한낱 지난 시대의 유물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아직도 이념의 푯대 위에서 패거리를 지어 춤추자는 것인가? '뉴' 또는 '신'이란 접두사를 붙여 포장만 새롭게 한 채, 우리 사회를 다시 이념의 질곡으로 몰고 가려는 음모는 없는가? 결국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좌우의 공방은 우리 사회를 과거의 볼모로 잡아 놓겠다는 이데올로기 맹신자들의 합작 공모에 불과하다.
새로운 시대의 대중은 실천과 실용을 잣대로 지도자의 말과 행동을 가름한다. 또한 이것이 세계사의 대세다. 그런 관점에서 대안교과서는 시대를 역류하는 '착각'에 불과하며, 그것을 둘러싼 논쟁은 이데올로기의 편향성만을 부채질할 뿐이다.
따라서 애당초 대안교과서를 구상한 이들이 시도했던 이념적 편향의 수정은 도리어 불가능해지는 셈이다. 오히려 그들이 기존 교과서 집필자들이 저질렀다고 비난했던 '사실의 왜곡'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 실천ㆍ실용의 잣대로 역사 평가해야
구체적으로, 기존 교과서의 '민주화' 편향성에 대해 대안교과서가 '산업화' 편향성을 들고 나선 것이야말로 넌센스 코미디의 극치다. 우리 사회 구성원 중 누가 민주화를 싫어했던가? 과연 누가 산업화를 싫어했던가? 민주화와 산업화를 마치 양자 선택의 문제로 삼는 것 자체가 사실 왜곡의 출발이며, 이데올로기 시대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입증이다.
기실 민주화와 산업화를 모두 추구하고 싶었던 것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바램이었다. 오로지 실천과 실용의 잣대로 누가, 어떻게 우리 역사의 민주화와 산업화에 기여했는가를 기록하고 평가하는 것이 새로운 21세기 교과서가 담아야 할 내용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념의 시대가 끝났음을 진솔하게 가르치는 역사책이 나와야 할 때다. 그러므로 무조건 새 대안교과서는 이념의 질곡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양필승ㆍ건국대 사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