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퍼거슨 지음ㆍ김종원 옮김 / 민음사 발행ㆍ521쪽ㆍ3만5,000원
“‘제국’과 ‘제국주의’라는 말은 ‘포스트모던’ 세계에서는 ‘욕의 한 종류’가 되었다.” ‘당연한 거 아냐?’라고 생각하는 순간, 문장 앞에 떡 하니 붙은 “불행하게도”라는 수식어가 뒤통수를 친다. 제국주의를 욕하는 것이 불행하다고? 화자가 ‘신제국주의의 전도사’로 불리는 영국의 역사학자 닐 퍼거슨이라면 놀랄 일도 아니다. “미국은 제국이며 제국이 돼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미국의 신보주의자들, 이른바 ‘네오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퍼거슨의 2003년 작 <제국> (원제 Empire : How Britain Made the Modern World)은 미 제국의 형님 뻘인 영 제국의 400년 역사를 조명한 책이다. 그는 해적질이나 일삼던 섬나라 영국이 세계 인구의 25%, 그에 버금가는 땅과 바다를 지배하는 역사상 가장 큰 제국으로 군림하다 파산하기까지의 과정을 시시콜콜한 일화 등을 곁들여 흥미롭게 풀어낸다. 제국>
그러나 저자의 주된 관심은 영 제국의 역사 그 자체보다는 그것이 인류사에 유익했는가, 해로웠는가 하는 물음에 놓여있다. 저자의 주장은 전자쪽이다. 그는 물론 노예제도나 인종차별, 학살 따위의 부정적 측면도 다루지만, 영 제국이 없었다면 의회민주주의의 확산, 자유무역 확대로 인한 세계경제의 발전 등도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나아가 <제국 : 영국적 세계질서의 흥망과 강대국을 위한 교훈> 이라는 미국판 제목이 시사하듯이, 세계 유일의 강대국 미국이 영 제국의 경험에서 배워 새 제국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국>
“좋든 싫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대부분 영 제국의 산물이다. 흠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피를 덜 흘리고 근대성에 이르는 길이 있었을까.”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이 도발적인 물음은, 지금도 식민지 시대의 유산을 짊어지고 있고 나아가 대미관계를 둘러싸고 치열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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