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커 쏘울닛 지음ㆍ설준규 옮김 / 창비ㆍ201쪽ㆍ1만2,000원
네루다의 화법을 비틀어 말하자면, 역사의 진보는 스무 편의 절망의 시 뒤에 불리는 한 편의 사랑노래 같은 것일지 모른다. 절망의 시가 꼭 스무 편일 리 없고 사랑 노래 역시 마지막 기다림의 순간에 불린다는 보장도 물론 없다. 그래도 언젠가, 또 어쩌면 지금 저 먼 어디선가 그 노래가 불리리라는 믿음! 곧 희망이다. 역사의 진보는 그 희망을 먹고 나아가는 것일지 모른다.
미국의 현장 운동가 리베커 쏘울닛의 에세이 <어둠 속의 희망> 은 미래의 어둠이 “무덤의 어둠인 동시에 자궁의 어둠”이라는 인식 위에 서 있다. 나은 세상을 향한 혼신의 노력이 처절하게 짓밟힌 순간, 그의 희망은 빛을 발한다. 이 책을 읽는 것은 그 빛의 뿌리를 찾아가는 일이다. 어둠>
미국 최초의 거대 반핵운동으로 ‘제한적 핵실험 금지조약’(1963)이라는 승리를 이끈 ‘평화를 위한 여성파업’의 한 활동가는 어느 글에 “어느 날 아침 비를 맞으며 케네디의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노라니 참으로 바보 같고 부질없는 노릇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썼던가 보다. 하지만 훗날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반핵활동가 가운데 한 명인 벤저민 스팍 박사는 자신의 삶의 전환점으로 “한 작은 무리의 여성들이 비를 맞고 백악관 앞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본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런 아이러니컬한 역사의 결절들을 친절히 열거한다.
미국의 진보주의자들을 절망케 한 2004년 가을의 선거(부시 승리) 직후, 남미의 칠레는 피노체트의 독재를 종식시켰고 베네수엘라는 좌파 민중주의자 우고 차베스를 선택했으며, 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는 순간 멕시코 치아파스에서 사파티스타가 봉기했다. 또 미국 군부가 발명한 인터넷이, 비록 “너절한 포르노사이트로 이뤄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파티스타의 혁명 진지가 되고, 전세계 시민 불복종 운동을 조직화하는 막강한 동력이 되지 않았는가.
‘손쉬운 절망’은 ‘거짓 희망’만큼 편리하고 기만적이고 그래서 유혹적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지금 비록 저 어둠 속에 있지만 현재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곳이 지금 내가 서서 과거와 미래를 마주하는 곳, 이야기들이 합류하는 곳, 세계의 수많은 중심 가운데 한 곳”이다.
저자가 말하는 ‘희망’은 거대 역사의 원리로서의 희망이지만, 우리 일상의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희망으로 들어도 좋을 것이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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