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허가 건물 보상 시점을 토지보상법에 따라 1982년에서 89년으로 바로잡으라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권고를 받은 서울시가 수용여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거부하자니 여론으로부터 "상위법을 무시한 안하무인격 주택행정"이라는 비난이 쏟아질 것 같고, 수용하자니 "대책도 없이 보상 수혜자만 늘렸다"는 비난을 받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고충위는 이달 초 "82년 4월8일 이전에 건축된 무허가 건물에 대해서만 보상하도록 한 서울시 국민주택 특별공급 규칙은 현행 토지보상법령을 위반한 것"이라며 시에 제도개선을 권고하고 29일까지 수용여부를 회신토록 했다.
토지보상법 시행규칙에는 정부 등이 공익사업을 시행할 경우 89년 1월24일 이전에 지어진 주거용 무허가 건물에 대해 아파트 입주권 제공 등 이주대책을 수립해 주도록 규정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시는 아직까지 수용여부 결정을 미룬 채 여론의 눈치만 보고 있다. 일단 시는 고충위의 권고 거부가 '서울시의 월권'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데 대해 적잖이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모든 법령은 상위법의 위임범위 내에서만 효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가 명백히 상위법에 어긋나는 규칙을 고수할 수만은 없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시가 무작정 권고를 받아들이기도 힘든 입장이다. 고충위 권고에 따라 보상시점을 89년으로 할 경우 보상대상 무허가 건축물이 수만 동에 달하지만 이들 건축주에게 이주 및 보상차원에서 지급할 아파트 입주권ㆍ분양권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시는 이 때문에 이주보상대상자간 입주권 지급 등에 따른 형평성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고 판단, 이번 기회에 아예 규칙을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 관계자는 "현재도 택지부족으로 아파트 공급물량이 달려, 입주를 못하고 대기 중인 이주 보상자들만 6,500명이 넘는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추가로 보상자 대상을 확대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무허가 건물에 대한 보상은 관련 규칙을 없애버리면 그만"이라며 고충위의 권고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고충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도시계획에 따른 불가피한 건물 철거라 하더라도 이는 공권력에 의한 재산권 침해인 만큼 피해보상을 해주는 것은 당연하다"며 "만약 시가 권고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시의회나 감사원에 관련자료를 넘겨줘 제도개선을 위한 입법자료로 활용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안경호 기자 k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