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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음식-박재은의 음식 이야기-지방(fat)의 풍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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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음식-박재은의 음식 이야기-지방(fat)의 풍미

입력
2006.11.3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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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을 때, 입안을 확 감싸는 기분 좋은 느낌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뭔가 단 맛과 짠 맛과 신 맛과 모든 맛이 적절하게 균형이 맞으면서 생겨난 그 가득함. 그 가득함을 가리켜 ‘풍미’라 한다. ‘풍미’를 네이버에서 지식 검색 해보면, ‘맛의 고상함’이라 나오고 이해를 돕기 위해 ‘조미료를 많이 넣으면 풍미가 없어진다’고도 이른다.

프랑스의 어느 요리사는 풍미를 만들어 내는 비결이 소량의 버터나 와인을 어떻게 쓰느냐에 있다고 내게 자랑했고, 일본의 어느 제빵사는 애플파이에서 눈에 뵈지도 않는 계피가루와 같이 숨겨진, 은밀한 요소들이 요리의 품격을 높인다고 가르쳐 준 적이 있다. 확실한 것은 ‘풍미’는 ‘생식’을 통해서는 맛 볼 수 없다는 것. 본래의 재료에 이렇게 저렇게 맛의 탑을 쌓아가며 조리하다가 그 조리의 정점에서 모든 맛의 밸런스가 딱 맞아 떨어질 때 ‘풍미’가 생긴다는 것이다.

♡ 오므라이스

일본의 간사이(關西) 지방을 여행할 때의 일이다. 20세기 초에 문을 열었다는 오므라이스집을 만나게 되었다. 자기네 말로는 전 세계에서 아마 최초로 오므라이스를 선보인 집이라나. 아무튼 골목까지 기다리는 사람들로 줄이 길었고, 20여 분을 기다려 안내 된 자리는 협소했다. 우리 테이블은 새우 오므라이스와 치킨 오므라이스를 하나씩 주문하고, 기다리면서 맥주를 한 잔 하기로 했다.

드디어 오므라이스 등장. 첫 입에 치킨 오므라이스를 떠먹어 보았다. 정말 티비 광고 속 어느 장면처럼 ‘음~’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육수와 버터에 적절히 코팅된 밥알은 한 알 한 알이 탱글 살아 있고, 알알이 머금고 있는 육수의 맛이 입안에서 팍팍 터져 나왔다. 그 맛들을 아우르는 계란의 역할. ‘오므라이스=케첩에 볶은 밥’인줄로만 알던 내게 새로운 경험이 된 순간이었다. 접시를 바꿔서 이번에는 새우 오므라이스를 맛보기로 했다. ‘와!’ 짧은 감탄사가 또 새어 나왔다.

“이건 뭐지?” 하고 거슬러 올라보니 닭 국물로 밥맛을 낸 치킨 오므라이스와 달리, 해물 육수로 밥맛을 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홍합밥이나 굴밥처럼 물가의 냄새가 확 느껴지는 그런 맛에 굵직한 새우가 성글게 박혀있고, 그 밥과 그 새우를 다시 계란이 싸고 있었다. 그 삼위일체가 한 입에 담겼을 때 풍겨내는 따뜻하고 고상한 느낌! 내가 ‘풍미’의 개념을 어렴풋 알게 된 소중한 한 끼였던 것 같다.

♡ 개구리 뒷다리

뉴욕의 중심부인 ‘미드 타운(mid-town)’은 비즈니스가 이뤄지는 고층 건물과 오래된 성당, 쇼핑가가 섞여있는 독특하고 바쁜 동네다. 특히 관광객이 많이 찾는 ‘5번가(5th avenue)’에는 온갖 좋은 것들만 모아 놓은 백화점과 숍들이 즐비해서 더 북적인다.

이 5번가를 살짝 빠져나와 골목을 걷다보면 ‘라 그르뉴이(la grenouille)' 즉, ’개구리‘라는 뜻을 가진 레스토랑이 보인다. 좁은 입구만으로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데, 입구를 넘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성장을 한 노신사가 ‘봉쥬르’하며 프랑스식으로 맞아준다. 코트를 받아 걸어 주고 자리로 안내하는데, 그 좁다란 입구로는 상상할 수 없는 넓은 홀이 펼쳐진다. 정말 미로 같고 알쏭달쏭한 것이, 프렌치 스타일이다.

‘라 그르뉴이’는 삼대를 걸쳐 가족들끼리 운영하고 있는 프랑스 레스토랑으로, 각종 리뷰를 통해 그 맛이나 우아한 분위기가 정평이 나 있는 곳. 개구리 로고를 쓰고, 이름까지 그러한 집답게 프랑스식으로 요리한 ‘개구리 뒷다리’가 유명한 집이다.

개구리 뒷다리를 주문해 보았다. 어른 손가락 보다 작은, 그러나 오동통 살이 오른 다리 몇 개가 접시에 담겨 나온다. 다리의 발목에 해당하는 가녀린 부위를 엄지와 검지로 딱 잡고 허벅지를 한입에 훑었다. 동시에 입 안에 퍼지는 따뜻한 기운! 정제된 버터에 볶아진 야생의 맛에 소금과 후추, 약간의 와인으로 적당히 간을 맞춘 맛의 조합이 입에 가득 찬다. 손가락보다 작은 개구리 뒷다리에서 다시 한 번 ‘풍미’를 느낀 순간.

♡ 비계를 띄운 라면

서울의 어느 일본 라면 식당은 늘 두 종류의 국물을 준비 한단다. ‘아가씨 용’과 ‘아저씨 용’이라 부르면 쉬운데, 전자는 기름기를 싹 걷어내서 말간 국물이고 후자는 기름이 둥둥 뜬 진한 국물이다.

튀기지 않은 생면을 쓰는 일본 라면의 특성상 한 그릇 안에서 풍미를 만들어 내기란 쉽지 않은 모양. 실제로 일본에서도 풍미가 진하기로 소문난 집들은 ‘지방’을 제대로 이용한 경우가 많다. ‘기름 덩어리’, ‘성인병의 근원’ 이라 천대 받는 비계가 사실 맛의 엑기스이기 때문이다.

일전에 강의를 들었던 프랑스 셰프는 이런 말을 했다. ‘버터를, 기름을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풍미가 달라진다.’고. 소량의 지방이라도 제대로 쓰면 얼마든지 풍미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무(無) 지방’이 환영 받는 현대에는 풍미를 맛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곱창전골에 떠오르는 기름, 삼겹살에 붙어 있는 비계, 후라이드 치킨의 바삭한 껍질이 없다면 이 메뉴들이 제 맛을 못하는 이치와 같다. 살 찔까봐 비계를 떼어내느니 먹는 양을 조금 줄이고 제대로 풍미를 느껴보자. 나는 오늘 점심으로 닭 육수로 맛 낸 국물에 생 라면을 넣고 요즘 말 많은 닭, 그것도 껍질만 취해 바짝 튀겨 올려본다.

음식 칼럼집 ‘육감유혹’ 저자 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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