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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은 일하고 싶다/ <하> 정부 기업도 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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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은 일하고 싶다/ <하> 정부 기업도 뛰어라

입력
2006.11.29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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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국민은행 신도봉지점. 창구 한쪽에 마련된 책상에서 꼼꼼히 뭔가를 살피던 조운제(57)씨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1,000만원 짜리 자기앞수표 1장에 위조 여부를 확인했다는 날인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조씨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 날인이 빠졌네”라고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는 담당자의 태도가 문제였다. “은행 업무가 장난입니까. 숫자 하나에 거액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은행입니다. 조그만 실수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세요.” 담당자의 얼굴이 벌개졌다.

조씨의 정식 직함은 내부통제점검자다. 대출 등 전날 은행에서 처리된 업무가 규정대로 정확하게 이뤄졌는지 확인ㆍ점검 하는 일을 한다. 조씨는 국민은행 지점장을 지내다 지난해 2월 명예퇴직 했다.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고용지원센터에 가서 두 번 놀랐다는 그는 “하나는 팔팔한 내가 고령자로 분류된다는 사실에, 또 하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죄다 단순 노무직이라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올 1월 연봉 2,400만원을 조건으로 이 곳에 재취업했다. 내부통제점검자는 국민은행이 은행 퇴직자의 경험과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기 위해 올해부터 새로 만든 일자리다. 조씨는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1968년 은행원이 된 이후 40년 가까이 쌓은 은행 관련 경험을 써먹을 수 있는 곳이 없어 답답했다”며 “돈도 벌고 금융 업무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해 줄 수 있어 보람 있다”고 말했다.

고령자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노력이 절실하다. 고령자 개인에게는 제2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좋은 발판이 되고, 기업은 숙련된 노동력을 쉽게 공급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나이 든 퇴직자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다. 국민은행은 올 처음 내부통제점검자라는 직무를 만들어 은퇴자 524명을 다시 모셔왔다.

이 은행 장익환 준법감시운영부장은 “은행 업무에 해박한 분들이다 보니 업무 교육을 달리 할 필요가 없다”며 “재입사한 은퇴자들의 업무 만족도도 크지만 회사로서도 내부통제점검자 제도를 도입한 뒤 금융사고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대우건설 SK건설 등 건설회사들은 올 봄에 인력이 취약한 해외 건설 분야 진출을 위해 각각 40명과 170명의 은퇴한 건설 베테랑들을 재입사 시켰다. 이랜드와 GM대우도 300명과 1,700명의 퇴사자에게 일거리를 다시 제공했다.

기업의 노력은 주로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 도입 등에서 나타난다. 올 1월 대한전선을 시작으로 한 기업들의 정년 연장 움직임은 한국농촌공사 등 공기업과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일반 기업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정년 연장은 또한 노사 단체협상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정 연령이 되면 임금을 깎는 대신에 고용을 계속 보장해주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등 50곳에서 실시 중이다. 이 가운데 절반은 정년 이후에도 임금피크제 적용 당시 임금으로 고용을 이어가는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기업에 무작정 고령자 고용을 강요하기는 무리한 측면이 적지 않다. 이윤 추구라는 기업의 목표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견기업의 한 인사담당자는 “사회적 의무도 좋지만 우리부터 살고 봐야 할 거 아니냐”며 “고령자를 고용하라고 닦달하기 전에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부터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도 고령자 실업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4월 노동부 내에 고령자 고용팀을 신설, 다각적인 정책을 내놓고 있다. ‘퇴직은 늦추고 재취업은 쉽게’가 정책의 목표다.

정부는 또 올 초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장을 지원하고 있다. 고령자고용촉진 장려금, 고령자인재은행, 고령자 고용안정프로그램 컨설팅비용 지원 등의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일정 비율 이상의 고령자를 고용하도록 하는 기준고용율제도도 시행, 고용률이 낮은 기업에 과태료를 물게 하고 있다. 고령자를 위한 취업포털(senior.work.go.kr)을 운영하는 등 취업알선도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김동배 연구위원은 “기업에 장려금 주는 수준의 정책이 얼마나 효과를 보고 있는지는 회의적”이라며 “우선 정년을 못 채우고 나가는 사람들이 없도록 각 기업들이 정년제를 잘 지키고, 정부는 법으로 정년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부의 김태홍 고용평등심의관은 “기업, 정부의 노력과 함께 고령자의 능력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모든 제도와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60세 이상 권고' 한국 정년제… 선진국은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정년제에 있다. 선진국 대부분은 정년제를 인정하지 않거나 연령차별 금지를 법으로 정해 고령자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회사에서 퇴출되는 경우가 없도록 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고령자고용촉진법에서 60세 정년을 권고하고 있지만 의무는 아니다.

미국에는 정년제 자체가 없다. 경찰 소방관 등 직무 성격 상 연령 제한이 합리적으로 필요한 경우는 예외다. 영국과 독일은 65세 미만 정년을 법적으로 금지한다. 오스트리아 스페인 체코 포르투갈에서는 판사, 공무원, 비행기 조종사 등 특정 직업에만 정년제를 인정하고 다른 직업에는 정년제가 없다. 핀란드는 68세가 정년이다.

독일은 9월에 ‘이니셔티브50+’라는 고령 인력 활용방안을 발표했다. 45.4%인 55세 이상 인구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2010년까지 50%로 올리자는 취지다. 독일은 특히 고령 근로자의 개념을 만55세에서 50세로 낮춰 적극적인 고령자 고용 장려 정책을 펴고 있다.

프랑스는 6월 2010년까지 55~64세 취업률을 50%(현재 40.7%)까지 올리겠다는 고령근로자 고용안정계획을 내놓았다.

법적으로 60세 정년을 의무화하고 있는 일본은 4월 고령자고용안정법을 개정해 고령자 고용 정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다. 개정법에 따르면 기업은 고령자 고용과 관련해 세 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

▦정년을 62세로 연장하거나 ▦정년제를 폐지하든지 ▦앞의 두 가지가 다 힘들면 노사 합의로 60세 정년 이후에도 계속 일할 수 있는 업무를 정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이를 통해 2013년까지 정년이 실질적으로 65세로 연장되는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정년을 최소 62세로 하는 법을 만들었으며 이를 어긴 기업주는 벌금이나 6개월 이하의 징역형을 받는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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